개는 인간의 가장 좋은 친구라고 하지만 그 말은 사실이 아니다. 개의 평균수명은 인간의 그것보다 현저히 짧다. 개의 수명은 길어도 20년을 넘지 못한다. 대형견은 소형견보다 수명이 짧은 경우가 많다. 아니다. 개는 인간의 가장 좋은 친구가 맞다. 그렇지 않다면 사랑하던 개가 세상을 떠났을 때 쏟아내는 그 많은 눈물을 설명할 길이 없으니까. 아침달 출판사에서 <나 개 있음에 감사하오>라는 ‘댕댕이 시집’을 펴냈다. 모르긴 해도 곧 ‘냥이 시집’도 나오지 않을까? 표지에는 개 한 마리가 책 위에 두발로 서서 다른 두발로 책을 펴들고 읽는 일러스트가 있다. 동물과 사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가져봤을 소망. 개가 말을 하거나 글을 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묻고 싶은 게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어디가 아픈 거야? 오늘은 기분이 어때? 어떤 간식이 좋아? 산책길에 불만은 없어? 넌 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답은 돌아오는 법이 없지만, 강지혜, 김상혁, 남지은, 민구, 박준, 성다영, 송승언, 심보선 등 개와 함께 살았고 살고 있는 시인들의 시와 사진을 읽는 것으로 이 애끓는 마음이 나 하나만이 아님을 확인하고 그 안에서 기쁨을 느낄 수 있다. 개에게서 사랑받는 기분을 알고 그에 감사하는 사람들 속에서.
유계영 시인은 “호두가 개일 리 없다”고 한다. 그는 호두에게 ‘앉아’, ‘손’, ‘기다려’ 등을 요청하지 않는데 그 모든 것을 유계영 시인 자신이 더 잘하기 때문이다. 그의 짧은 산문 <개와 개 아닌 마음>은 쉼표와 마침표 하나까지 흘려버리기 아까운 글이다. “사랑의 놀라운 능력 중 하나는 존재를 흐르게 한다는 점이다. 나는 내 안에 틀어박힌 방안퉁수였으나, 땡볕과 맹추위에도 눈곱을 떼고 집을 나서는 산책자가 된 것이다.” 그리고 개의 산책에 동반자가 된 사람이라면, 아아, 이 말에 공감하지 않을 도리가 없어지리라. “오늘의 구름과 오늘의 나무. 신비로운 오늘의 새소리를 들어봐. 모두 호두가 알려준 것이다. 가끔은 개가 천국의 파견자는 아닐까 생각한다. 그러지 않고서는, 나의 어두운 장소들을 단숨에 밝혀놓은 이 작은 개에 대해 설명할 길이 없다.”
민구 시인의 <이어달리기>라는 시는 첫행에서 이미 나를 울게 만들었다. “이다음에는/ 너의 개가 될게”. 그는 15년간 가족이었던 개 복자를 떠나보낸 가족의 이야기를 산문에 적었다. “나는 빵이나 치킨 같은 걸 주면 개가 죽는다고 나무랐지만, 우리는 맛있는 걸 먹을 땐 상 밑에 개가 먹을 약간의 것을 몰래 덜어놓고 먹었다.”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 첫 문장은 이렇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모습이 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모두 제각각의 불행을 안고 있다.” 개와 함께 행복한 일상은 모두 모습이 비슷하다. <나 개 있음에 감사하오>를 읽으면 그 사실을 모든 페이지에서 깨닫고 목에서 뜨거운 것이 올라온다. 송승언 시인의 <개는 모른다 모르는 개는 안다>의 첫행을 보라. “개는 모른다. 이 장난감 안에 든 간식을 어떻게 꺼낼 수 있는지./ 그러나 개는 안다. 곧 그 간식을 먹게 되리라는 것을.” 그렇게 시집을 읽다가, 사랑했던 나의 개들의 이름을 하나씩 불러본다. 며칠 전에, 무지개다리를 건넌, 사랑했고 사랑받은 개들의 긴 목록에 새롭게 이름이 하나 추가되었다. 타티라는 이름의 작은 흰 개다. 부디 그곳에서 많은 좋은 개들과 함께 건강하게 뛰어놀기를. 언젠가 다시 만날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