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법의 체계를 근본적으로 바꾼 전설적인 여성 대법관조차 자신의 딸을 이기지는 못한다. 미국 대법관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세상을 바꾼 변호인>이 조명하는 모녀 관계는 그래서 더 흥미롭다. 대학에서 교편을 잡은 엄마 루스가 학생들에게 성차별과 관련된 법을 가르칠 때, 그의 딸 제인은 학교 수업을 빠지고 페미니스트 글로리아 스타이넘의 연설을 들으러 간다. “앉아만 있는 게 무슨 운동이냐”고 엄마에게 되묻는 딸은 자신의 눈앞에서 기회의 문이 닫히더라도 쉽게 체념하거나 무너지지 않는 전투력을 갖췄다. “널 좀 봐! 넌 자유롭고 두려움 없는 젊은 여성이야.” 음담패설을 일삼는 남성 노동자들에게 한바탕 욕을 퍼붓는 딸을 보며 루스는 새로운 시대가 도래했음을 직감한다. 변화를 갈망하던 1970년대 미국의 호방함과 자유로움을 표상하는 신여성으로서의 제인 긴즈버그를 연기하는 건 올해 스무살이 된 미국 미주리 출신의 신인배우 케일리 스페이니다. 그는 2018년 <퍼시픽 림: 업라이징>으로 데뷔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을 만큼 이 영화에서 안정적이고 뚜렷한 존재감을 드러낸다. <세상을 바꾼 변호인> 시사회에 참석한 긴즈버그는 “제인이 10대 때 실제로 저런 모습이었냐”고 묻는 지인의 질문에 “정말 그랬다”고 말하며 케일리 스페이니의 연기에 만족감을 표했다고 한다. 쓰레기 더미에서 주워온 고철로 자기만의 예거 ‘스크래퍼’를 만드는 고아 소녀(<퍼시픽 림: 업라이징>)부터 광적인 사이비 신도(<배드 타임 앳 더 엘 로열>), 어린 시절의 린 체니(<바이스>) 등의 뒤를 잇는 차기작은 알렉스 갈런드(<엑스 마키나> <서던 리치: 소멸의 땅>)의 테크 스릴러 드라마 <데브스>다. 이 작품에서 지적이면서도 고집스러운 테크 회사 직원으로 분할 예정이라는 케일리 스페이니의 모습이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영화 2018 <바이스> 2018 <세상을 바꾼 변호인> 2018 <배드 타임 앳 더 엘 로열> 2018 <퍼시픽 림: 업라이징> TV 2019 <데브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