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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충> 비평③] 윤웅원 건축가의 <기생충> 읽기, 공간의 구조와 이야기의 구조
윤웅원(건축가) 2019-06-20

<기생충>은 건축 자체다

청산농원이라는 푯말을 발견하고 잠시 망설였다. 서울 한복판에서 예상할 수 있는 집의 모습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밖에서는 집의 크기를 가늠하기 어렵게 벽돌담이 길게 이어지고 있었다. 인터폰으로 도착했음을 알리고, 안으로 들어갔다. 마당 안쪽 집은 대지의 크기에 비하면 저택이라고 부르기는 어려워 보였다. 그냥 조금 큰 2층집 정도였다. 현관문 안쪽 덧문을 열었을 때, 나는 잠시 당황했다. 철재 자바라가 안쪽에 자물쇠로 잠겨 있었기 때문이었다. 밖에서 자물쇠를 채우는 자바라를 안에서 잠가놓은 모습을 보았을 때, 낮선 느낌이 왔다. 조금 느리게 노부부가 다가와, 자바라를 열고 나를 응대했다. 집 안 곳곳의 골동품들이 철재 자바라를 설명하고 있었다. 대화의 소재가 떨어졌다고 느껴질 즈음, 노부부는 집 뒤의 정원을 보여주겠다고 말했다.

평범한 건물에 비해 정원은 놀랄 정도로 잘 조성되어 있었다. 산자락의 일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정원을 둘러보기 위해서 노부부와 함께 나지막한 경사를 올라갔다. 그곳에서 나는 진돗개 한 마리를 발견했다. 흰색 진돗개 한 마리가 목줄에 묶인 채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곧 나는 더 많은 진돗개가 정원에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수십 마리의 개들이 일정한 간격으로 집을 에워싸고 서 있었다. 이 이상한 상황을 다이어그램으로 그린다면, 목줄 길이의 반지름을 갖고 있는 원들이 주택을 둘러싸고 있는 모습일 것이다. 원들 사이에는 사람이 지나갈 수 있는 1m 정도의 틈이 교묘하게 유지되고 있었다.

나는 이 집이 어떤 이야기를 갖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야기를 만드는 것보다는 공간으로 보는 것에 익숙한 나는, 이 집을 먼저 공간의 구조로 설명해야 한다. 원(자바라)이 안쪽에 있고 밖으로 더 큰 원(진돗개들)이 있다. 바깥 원(진돗개들)이 아주 작은 원(개 목줄)들로 만들어지고 있다는 점이 흥미롭지만, 이 집 전체의 구조는 원 안의 작은 원이다. 나는 건축은 이야기들이 동결돼 공간으로 추상화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공간의 구조를 짜는 것은 이야기의 구조를 짜는 것과 동일한 일이다.

이제, 허락을 받지 않고 이 집으로 들어가려는 사람이 있다고 가정한다면 이 아날로그 보안경비시설은 어떤 이야기를 요구하게 될 것이다. 개들 사이의 틈을 이용해 들어간다거나, 안에서 잠근 자바라를 열기 위해 내부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거나와 같은 종류의 것들이다.

위, 아래 그리고 기생

오래전 기억 속의 집에 대해서 설명하는 것으로 글을 시작한 이유는 <기생충>이 영화에서 ‘공간의 구조’와 ‘이야기의 구조’ 사이의 관계에 대해 생각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기생충>은 공간의 구조와 이야기의 구조가 정확하게 일치하고 있는 드문 영화다. 따라서 공간의 구조를 설명하는 것을 통해서 <기생충>에 대해서 말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앞에 설명한 집처럼 공간을 생각하고 거기에 맞는 이야기를 생각해내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를 먼저 만들고 거기에 맞는 ‘공간의 구조’(공간이 아니라 공간의 구조다)를 <기생충>은 어떻게 찾아냈는지가 궁금했다.

예외가 있겠지만 대부분의 영화들은 이야기를 먼저 만들고, 이후에 거기에 적합한 공간을 찾아내는 것으로 보인다. 특별히 공간 친화적인 영화들이 그런 과정 속에서도 공간의 구조를 발견해내기도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영화에서 공간과 장소는 부수적이다. 각 장면에 어울린다고 생각하는 장소를 찾아내는 것이다. 이야기의 구조에 대해서는 많은 시간을 들이지만, 공간의 구조에는 그만큼의 노력을 들이지 않는 것같아 보인다. 구성원 전체가 백수로 살고 있는 한 가족이 차례로 부잣집 가족에게 고용되는 이야기를 생각했을 때, 그들이 살고 있는 집의 선택지가 꼭 반지하 주택과 고급 단독주택일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반지하 주택이 서울의 열악한 주거 형태의 대표적인 사례 중 하나지만 그것보다는 공간적으로 ‘아래’ 있다는 것 때문에 선택되어졌다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한 설명 같아 보인다. 그리고 부자 동네의 단독주택 또한 정말 부자들의 주거형식이라는 이유뿐만 아니라, 도시의 ‘위’에 있다는 이유 때문에 선택된 것 같아 보인다. 물론 단독주택이 숨겨진 공간을 만들어내기에 적합한 주거형식임에는 틀림없다.

정확하게 말하면, 이 도시의 ‘위’와 ‘아래’ 같은 시각은, 영화의 또 다른 이야기의 공간, 단독주택과 지하공간이 갖고 있는 위아래 구조를 발견한 후에 찾아졌을 것 같다. 단독주택의 지하공간이라는 개별적 의미를 더 넓은 사회적 의미, 즉 도시의 ‘위’와 ‘아래’에 동기화시킴으로써 영화의 주제를 확장시키는 것이다. 봉준호는 지하에 몰래 숨어서 사는 것과 백수 가족 모두가 부잣집에 취직하는 것이 ‘기생’이라는 개념으로 연결될 수 있다고 본 것 같다. 흥미로운 지점은 반지하 주택과 부잣집 단독주택이 경제·계층적 조건에 의해서 나온 단면이라면, 주택의 숨겨진 공간은 좀더 개인적인 상황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점이다. 이 비슷하지만 다른 두 단면이 이야기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고 있다.

도시의 단면과 주택의 단면을 일치시키다

도시의 단면과 주택의 단면을 일치시킨다는 생각은 <기생충>의 다른 공간들을 지배하고 있다. 기택(송강호), 기우(최우식), 기정(박소담)이 단독주택에서 빠져나와 아래로 아래로 계속 내려가는 장면과 와이파이를 잡기 위해 위로 올라가는 장면과 박 사장(이선균)과 연교(조여정)가 소파 위에서 섹스를 할 때 테이블 아래에 숨어 있는 기택 가족의 장면 등이 그 예이다. 아니, 엄밀하게 말하면 영화의 대부분의 장면에서 사람들은 올라가거나 내려가거나, 위에 있거나 아래에 있다. 그래서 기택의 가족이 반지하에서 단독주택으로 올라왔을 때, 단독주택 지하에 숨어 살던 그도 올라오게 된다.

두 가지 다른 이야기를 연결해서 영화를 만드는 형식은 많이 봐왔지만, 나는 두 이야기가 만드는 각각의 공간을 동기화시키는 형식의 영화를 본 적이 없다. 나는 조던 필의 영화 <겟 아웃>이나 <어스>가 건축적이라고 쓰면서 그가 시나리오를 쓰는 과정에서 다이어그램을 그릴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그런데 <기생충>을 보고 나서, 봉준호는 정말 ‘설계도’를 그릴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건축사무소에서 그리는 평면, 단면의 설계도가 아니라 어떤 것이 될지 모르겠지만, 그것은 공간과 이야기가 하나가 된 설계도다. <기생충>은 이야기와 공간이 정확하게 일치하는 영화를 만들었을 때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순간을 보여주고 있다. 나는 어떤 영화는 건축적이라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건물을 주제로 다루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구조의 영화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기생충>이 바로 그런 영화이다. 아니, <기생충>은 건축적이 아니라 건축, 그 자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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