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미디가 돌아오고 있다. <럭키>(2015), <청년경찰>(2017), <아이 캔 스피크>(2017), <완벽한 타인>(2018), <극한직업>(2018)의 대중적 성공을 <걸캅스>(2019)가 이어받았고, 이런 흐름은 한동안 지속될 것 같다. 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그 어느 때보다 개그맨이 웃기기 힘든 시대라고들 한다. 첫째, 점점 더 노골적이 되어가고 있는 온라인 콘텐츠의 수위를 공중파를 비롯한 제도권 미디어가 도저히 따라갈 수 없고, 둘째, “농담을 농담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이 무슨 말만 하면 과도하게 반응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런 도식 안에서 웃음과 ‘누군가를 배제하지 않는 사회를 향한 추구’, 즉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 PC)에 대한 추구는 서로 만날 수 없는 것이 된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2018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배우 프랜시스 맥도먼드가 소개했던 ‘포함조항’(inclusion rider)의 정신을 최대치로 구현하는 미디어 월드를 열어가고 있는 넷플릭스가 선보이는 다종다양한 코미디물을 보고 있으면, 웃음과 PC는 적대 관계가 아닐 뿐만 아니라 오히려 PC가 웃음의 영역을 개척하고 있는 듯하다. 특히 멜리사 매카시, 케이트 매키넌, 앨리 웡, 엘런 디제너러스, 완다 사익스, 에이미 슈머 등 여성이자 소수자로서의 정체성을 명징하게 드러내면서 웃음을 직조하고 있는 여성 코미디언들의 활약을 보면, 돈을 벌기 위해 혐오를 재미 요소로 삼아 웃음을 판매하는 일부 온라인 콘텐츠들과 스스로를 비교하는 태도는 시대착오적으로 보이기까지 한다.
<고스트버스터즈>(ⓒ 2016 Columbia Pictures Industries, Inc. All Rights Reserved.)
한편 <을들의 당나귀 귀>라는 책에서 영화연구자 심혜경은 이렇게 질문한다. “여자는 웃으면 안 되는 존재인 걸까요, 아니면 웃기면 안 되는 존재인 걸까요?” 이건 또 무슨 의미일까? ‘매소부’(웃음을 파는 여자=매춘부)라는 도식이 있듯이, 한국 사회에서 여자의 웃음은 언제나 성적으로 대상화되었고, 여자는 그렇게 대상화될 때에야 웃을 수 있었다. 더불어 그 웃음은 통제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었다. 개그맨 김숙이 ‘가모장숙’ 캐릭터를 연기하면서 “여자의 웃음소리가 담장을 넘어야 그게 행복이지”라며 가부장제의 오래된 교훈을 비틀어 재현할 때, 그 말이 정치적으로 급진성을 띠는 것은 이런 맥락 안에서다. 누가 큰소리로 웃을 수 있는가는 명백하게 정치적인 문제인 셈이다. 그러므로 목소리를 크게 내려는 여성들의 활동이 ‘노잼’으로 평가절하되고, 웃길 수 있는 재기가 남성들의 영역으로만 이야기되는 시대적 분위기란, 어쩌면 유구한 역사를 가지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고스트버스터즈> 여성판 리부트와 <걸캅스>에 대한 부당한 공격을 기억해보자).
이런 풍경을 배경으로 23회 부천영화제 특별전 ‘웃기는 여자들, 시끄럽고 근사한’에서는 여성과 웃음의 관계를 탐구한다. 무엇보다 여성들이 언제나 누려왔던 것으로서 웃음을 살펴보기 위해서 새로운 역사 쓰기를 시도했다. 특별전이 193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것은 그런 이유에서다. 여성과 웃음이라는 주제는 한 사회의 정치적이고 경제적이며 문화적인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시대상에 따라 여성에게 웃음이 허락되는 한도도 달랐고, 그 성격도 달랐던 것이다. 하지만 여성들은 언제나 경계와 한계를 넘나들며 웃음을 가지고 놀았다. 23회 부천영화제에서 웃고 웃기는 여자들의 역사를 확인하고, 이제 우리 앞에 열린 또 한번의 코미디 전성기를 어떤 상상력으로 열어갈 수 있을지, 함께 탐구해주시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