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프지 않으면 행복한 거 아닌가요?”라고 묻자 심리상담사는 고개를 갸웃하며 이렇게 답했다. “감정은 서로 연결이 되어 있어서, 슬픔을 느낄 수 없으면 기쁨도 느끼기 어려워요. 무감한 것은 무기력과 우울증으로 이어지거든요.” 감정의 파고 없는 상태가 안전하다고 여겨왔던 내게 그의 말은 의미심장했다. ‘기분이 없는 기분’이란 그런 것이다. 기쁨, 슬픔, 분노, 그 어떤 것도 느끼지 못하는 무감한 상태. 아무것도 하기 싫고,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처럼 여겨지는 기분. 구정인 만화 <기분이 없는 기분>은 무기력과 우울의 상태에서 첨벙거리다 안간힘을 다해 그로부터 빠져나오는 여성의 이야기다. 연락을 끊고 살던 아버지가 고독사했다는 연락을 받은 혜진은 언니와 함께 아버지의 장례를 준비한다. 아버지의 죽음이 남긴 행정 업무를 다 처리한 후 혜진은 ‘기분이 좋지도, 나쁘지도 않고, 기분이 없는 기분’이라는 것을 느낀다. 프리랜서로 일하며 남편, 아이와 함께 사는 혜진은 ‘아무것도 하기 싫은’ 자신의 상태가 괴롭다. 오늘도 일을 제대로 해내지 못했어, 아이에게 다정히 대해주지 못했어, 남편에게 짜증을 피우고 말았어, 아무것도 하기 싫지만 또 그런 자신이 싫어서 자책이 무한 반복되고 이는 곧 ‘죽음’까지 떠올리게 한다. <기분이 없는 기분>이 값진 것은 여기도 저기도 아닌 ‘중간’의 상태들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혜진을 괴롭히는 것은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나 죄책감이 아니지만 그 감정이 없다고도 할 수 없다. 혜진의 남편은 좋은 사람이고 혜진은 든든한 가정의 울타리 속에 있지만 그렇다고 불안과 상실감이 없지 않다. 죽고 싶지만 정말로 죽게 될까봐 두려운 마음이 하루에도 몇번씩 혜진을 쥐고 흔든다. 정확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그 수많은 애매한 기분과 상태들을 보여주고, 섣불리 위로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기분이 없는 기분>의 위로야말로 진정 다정하다.
나를 찾아줘
좋아하던 것들에도 흥미가 없고 잘해오던 일들도 할 수 없다. 기분도 감정도 느끼지 못한다. ‘나’를 잃어버린 것 같았다. (15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