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림은 베이커리 아카데미 수습생이다. 아카데미 대표는 운영하는 식당에 일손이 부족하면 수습생들을 내보낸다. 유림은 수제 햄버거 가게에 출근해 8시간씩 프렌치프라이를 만들다 튀김기를 고장내고 몇천만원에 달하는 손해를 배상하라는 통보를 받는다. 가족이 없고, 모은 돈이 없는 유림은 ‘죽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다’고 생각한다. 자살 시도가 실패로 돌아가자 정신병력 진단서를 받아서 보험료를 청구해야만 하는 유림은 의사에게 ‘저는 소녀가장이며 기초생활 수급자입니다’로 시작하는 긴 편지를 쓴다. 사실 유림은 자신을 ‘살아가다보면 누구나 겪는 만큼, 딱 그 정도만 힘들게 살았다고 생각’했다.(<병원>) 임솔아 소설에서 인물들은 자기를 연민하지 않는다. 대신 그들을 괴롭히는 것은 동정의 손길을 보내는 주변의 정상인들이다. 정상인들은 자신보다 부족한 상황에 놓은 인물을 ‘도움이 필요한 비정상인’으로 규정함으로써 권력을 획득한다. 그들은 위선적이고, 타인의 불행을 확인하고서야 안심하며 좋은 사람의 표정을 짓는다. <추앙>의 정원은 문단 내 성폭력 피해자다. 그가 자기 목소리를 내려 할 때 환멸의 대상이 되는 것은 사과 메일조차도 화려한 문학적 수사로 포장한 가해자가 아니다. 정원은 ‘성추행범을 욕하고 여성성의 해방을 부르짖으면서 동시에 성추행범을 추앙하고 그들의 가부장적이고 마초적인 성향을 찬미하는’ 선배 현석을 이해할 수 없다. 현석이 지지하는 것은 자유와 페미니즘, 자유로운 시 쓰기가 아니라 ‘시에 대한 고급한 안목을 드러내는 동시에 마이너한 것을 추구한다는 일종의 우월감’이었다. <눈과 사람과 눈사람>에 실린 8편의 소설 속 인물들은 오직 단독자로서 존재한다. 소설집 속엔 자기를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자신이 아닌 더 좋은 것이 되려 노력하는 강인한 사람들이 살아 숨쉰다. 단단하고 힘 있는 문장으로 써내려간 영후, 유림, 수희와 정원, 민주를 한동안 들여다볼 것 같다.
다시 하자고
지은은 여기가 우리의 도착지라고 여겼다. 나는 도착해버렸기 때문에 도리어 미아가 된 것 같았다. 앞으로 어디로 가야 하는 건지 막막했다. 무언가를 더 기대해서는 안 된다고 나는 다짐했다. 그다지 힘든 일은 없었다. 나름대로 행복했다. 그러나 혼자 이불을 돌돌 말고서 애처로운 자세로 잠들어 있는 지은을 보며, 우리의 미래가 저런 모양을 할 거라고 생각했다. 나는 그것을 기대했다. 기대할 거라곤 그것밖에 없었다. 무기력하다는 생각조차 무력감 때문에 할 수 없었다. 내가 견디고 있는 무언가가 무엇인지, 알고 싶지 않았다.(<다시 하자고>, 7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