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에는 실체가 없어서 문장으로 설명하기가 쉽지 않다. 남이 쓴 표현이지만 내가 익히 알고 있는 그 기분을 마치 내 것처럼 묘사한 문장을 만났을 때 그래서 더욱 반갑다. <씨네21> 이달의 책장에는 감정과 순간을 포착해 엮어낸 책들을 모았다. ‘작가들의 작가’ 리처드 브라우티건의 <도쿄 몬태나 특급열차>는 줄거리보다는 이미지가 크게 다가오는 책이다. 짧은 에세이 같은 글과 단편소설처럼 읽히는 131편을 모았는데 그가 1976년부터 1978년 일본과 미국을 오가며 쓴 글이다. 문학과지성사가 계절마다 내는 시리즈 <소설 보다>의 봄 2019편에는 김수온·백수린·장희원의 소설이 묶였다. 시간의 한순간을 베어내 그린 것 같은 단편들에는 함께 그때를 음미할 수 있는 매력이 있다. 임솔아 소설집 <눈과 사람과 눈사람>에 실린 8편의 소설 속 주인공들은 ‘정상’을 강요하는 사람들 속에서 온전히 자기 자신으로 단단하게 서 있다. “우리가 말할 수 있을까요”라고 연약하게 묻다가도 “말할 수 있지요”라고 다짐하는 인물들은 젊고, 믿음직하며, 푸르다. 구정인 만화 <기분이 없는 기분>을 한 문장으로 설명하면 ‘아버지의 죽음 이후 우울중에 빠졌던 여성이 그로부터 벗어나는 과정을 그렸’다. 그러나 기분이라는 게 그렇게 손쉽게 설명되지 않듯이 이 만화에도 복잡한 아버지와의 관계,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그래서 뭐라 설명할 수 없는 수많은 상태들이 존재한다. 그 어딘가에는 분명 누군가의 기분도 포함되어 있을 것이라 공감하고 위로받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