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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알스> 차인표·전혜림 감독 - 길이 이어지는 한 실패는 없다
송경원 사진 백종헌 2019-06-06

차인표, 전혜림 감독(왼쪽부터).

“길은 어디에나 있다.” <옹알스>는 12년간 전세계를 다니며 한국 코미디를 널리 알린 넌버벌 코미디 퍼포먼스팀 ‘옹알스’가 꿈의 무대인 라스베이거스에 도전하는 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다. 에든버러국제페스티벌, 런던 웨스트엔드 소호극장, 한국 예술의전당에서도 공연한 옹알스는 이미 성공한 팀처럼 보인다. 하지만 가만히 속사정을 들여다보면 마냥 해피엔딩에 머물러 있는 삶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주축 멤버인 조수원의 암 투병을 비롯해 크고 작은 난관이 산적해 있고, 현실적인 문제에 부딪칠 때마다 라스베이거스 도전은 구름 위의 꿈처럼 점점 멀어져가는 것 같다. 팀 ‘옹알스’의 힘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코미디를 하고 싶은 사람들’이 똘똘 뭉쳐 함께 오늘을 버티며 힘들 땐 쉬어가기도 하면서 내일로 나아간다는 점이다. 그리고 다큐멘터리 <옹알스>의 미덕은 그런 ‘옹알스’의 진짜 고민에 귀 기울이고 동참하는 솔직함에 있다. 제작, 연출, 출연을 맡으며 이번 영화를 만든 차인표 감독은 첫 장편 연출작에서 영화를 향한 열정과 사람을 향한 진심을 보여준다. 차인표 감독은 기술적으로 미흡한 부분을 느끼자 단편 작업을 함께한 전혜림 감독과 공동작업을 통해 모자란 부분을 채워넣었다. 2018년부터 시작된 1년간의 촬영은 ‘옹알스’의 해외 진출 프로젝트만큼 감독들에게도 쉽지 않은 도전이었다. 찍는 자와 찍히는 사람이 함께 성장하는 시간. 실패를 실패로 만들지 않는 힘은 거기서부터 출발한다.

-첫 장편 연출을 다큐멘터리로 선택했다. <옹알스>를 찍기로 결심한 계기가 무엇인가.

=차인표_ 원래 옹알스 팬이다. 시작은 그들의 라스베이거스 진출을 돕고 싶은 마음에서 비롯됐다.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내가 상상했던 것과는 다른 얼굴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후엔 이 친구들의 진심이 궁금해졌다. 애초엔 제작만 맡을 예정이었는데 사정이 생겨 진행 중이던 감독이 하차했고, 이대로 프로젝트를 무산시킬 수 없어 내가 직접 메가폰을 잡았다. 막상 시작은 했는데 막막하더라. 그래서 예전부터 알고 지내던 전혜림 감독에게 도움을 청했다.

=전혜림_ 신인으로서 이런 좋은 기회가 주어지면 마다할 이유가 없다. 게다가 옹알스는 원래부터 관심이 있던 팀이기도 했다. 편집이나 촬영 기술은 있지만 다큐멘터리 경험이 있었던 건 아니어서 내게도 쉽지 않은 작업이었다. 부족한 부분은 차인표 감독이 채워줄 수 있다고 믿고 시작했다. 후배인데도 같은 연출자로서 내 의견을 존중해주셨고 언제나 열린 마음으로 경청해준 덕분에 가능한 작업이었다.

-‘옹알스’의 성공담이 아니라 항상 넘치는 에너지로 웃음을 전하는 ‘옹알스’의 또 다른 모습을 알아가는 과정을 따라간다.

차인표_ 애초에 그린 그림은 옹알스의 라스베이거스 진출기였다. 그런데 예상과 달리 이 친구들이 적극적으로 움직이질 않았다. 촬영팀 계약 기간은 다 되어가고 초조해졌다. 결국 원하던 화면을 건지지 못하고 몇 개월이 지나가버렸다. 그때 다큐멘터리와 극영화의 접근 방식이 전혀 다르다는 걸 몸으로 깨달은 것 같다. 물론 내가 직접 라스베이거스 진출에 도움을 주거나 연결시켜줄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해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 전주국제영화제 출품이라는 미션이 없었으면 아직 찍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웃음) 이번 작업을 통해 다큐멘터리는 살아 있는 생물이라는 걸 배웠다.

전혜림_ 옹알스도, 우리의 이야기도 여전히 진행형이다. 처음에 생각했던 옹알스의 모습과 실제 그들의 고민과 그들이 놓인 현실은 판이하게 달랐다. 라스베이거스가 옹알스에게 도전대상이었다면 우리에겐 옹알스가 그랬다. 그들에게 다가가는 시간을 겪어내며 영화인으로서는 물론 인간적으로도 여러 가지를 배울 수 있었다.

-공동연출의 장점도 있겠지만 사실 의견 충돌도 적지 않았을 텐데, 어떻게 역할 분담을 했나.

차인표_ 전혜림 감독은 <마이 보이>(2013) 연출부 때 인연을 맺은 후 눈여겨보고 있다가 내가 제작사 TKC픽처스를 만든 후 바로 섭외했다. 내 첫 번째 단편영화인 <50>(2017)에서 조감독을 맡았고, 전혜림 감독의 단편 <샤또 몬테>(2019)에 내가 배우로 출연하기도 했다. 찍고 편집하는 기술적인 부분은 의지하고 따라갔다. 다만 영화를 대하는 방식과 성향은 상당히 차이가 있다. 나는 좀더 대중적인 화면을 원했고 전혜림 감독은 심도 있는 접근과 디테일한 화면의 완성도를 추구했다. 서로 절충하면서 방향을 만들어나가는 과정이 쉽지 않았지만 그만큼 건설적이었고 보람 있었다.

전혜림_ 차인표 감독이 강력한 에너지로 힘 있게 추진해나가면 내가 그 결과물을 가지고 세세하게 방향을 만들어 보조하는 작업의 반복이었다. 편집 버전만 수십 가지가 있다. 일부러 극적으로 찍은 것도 있었고 정서적으로 약간 과장된 장면들도 없지 않았다. 하지만 옹알스와 1년간 함께하면서 보고 느낀 것들을 담백하고 담담하게 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애초 목표는 옹알스의 라스베이거스 도전기였지만 찍으면서 상황도, 시선도 바뀌어간다. 진심이 묻어나는 솔직한 태도가 인상적이다.

차인표_ 원칙은 두 가지였다. 거짓말하지 않기. 그리고 옹알스에게 어떤 식으로든 응원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 솔직히 말해 ‘옹알스’는 방송에서 잘 풀리지 않은 코미디언이었다고 생각한다. 한국에서 공연하기가 여의치 않으니 에든버러국제페스티벌 등 해외로 진출해 스스로 길을 개척한 거다. 그 과정 자체가 존경받아 마땅하다. 인생을 살면서 배운 게 있다면 내 앞에 하나의 문이 닫힐 때 반드시 어딘가에서 다른 문이 열린다는 사실이다. 길은 하나가 아니다. 힘들 땐 잠깐 쉬어가도 된다. 의지만 있다면 길은 결국 이어지기 마련이다. 그런 의미에서 막막한 현실에 답답함을 느끼는 분들이 <옹알스>를 보며 위안과 희망을 얻었으면 좋겠다.

-두분 다 감독으로서 어려운 첫발을 내디뎠다. 현재 준비 중인 다음 행보도 궁금하다.

전혜림_ 캐스린 비글로처럼 힘이 느껴지는 감독을 꿈꾼다. 차기작은 연쇄살인마가 등장하는 슬래셔영화를 준비 중이다. 장르색을 유지하면서도 자신의 세계를 선명하게 보여줄 수 있으면 좋겠다. 장기적으론 한 사람 몫의 제대로 된 직업 영화인이 되는 게 목표다. 욕심을 부린다면 언젠간 차인표 선배님처럼, 이번엔 내가 누군가에게 좋은 기회를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차인표_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롤모델이다. 늦은 나이에 영화사를 설립해 자신의 영화 작업을 꾸준히 이어가는 모습이 존경스럽다. 학교에 들어가 연출을 배워볼까 고민하던 차에 <목포는 항구다>(2004)를 함께 했던 김지훈 감독이 글로 배우지 말고 직접 해보라고 권하더라. 그래서 덜컥 제작사를 만들었다. (웃음) 지난해 단편영화 <50>, 올해 전혜림 감독이 연출을 맡은 단편 <샤또 몬테>, 그리고 첫 장편 <옹알스>까지 멈추지 않고 필모그래피를 쌓아나가는 중이다. 젊은 감독들과 함께 오래 일하는 게 목표다. 이번에 전혜림 감독과 함께 한 것처럼 그들의 에너지를 느끼고 배우고 싶다. 나눌 수 있는 일은 나누고 없으면 새롭게 만들기도 하면서, 작지만 따뜻한 플랫폼이 될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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