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껏 살면서 내게 어떤 타고난 재능이 있다고 느껴본 적이 단 한번도 없다. 늘 그게 충격이고 고민이었다. 오래 배운 피아노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당연히 피아니스트가 될 거라 확신했는데, 시내 아트홀에서 열린, 같은 반 친구의 손이 보이지 않는 엄청난 연주를 접한 뒤 돌아오던 지하철에서 내 오랜 꿈을 스스로 접었다. 초등학교 3학년 때였다. 그렇다면 사실 피아노보다 더 오래 좋아한 미술이 내 길일 수 있겠다 싶어 또 꾸준히 팠는데, 장학사가 온다며 반 대표로 괘도를 그려오라던 담임선생이, 실은 나보다 더 소질있는 친구가 일찍 하교하는 바람에 나한테 부탁했으니, 잘해오라고 신신당부했다. 밤새 의욕 하나 없이 교과서의 그림을 베끼며 화가의 꿈을 접었던 때는 아마 5학년 무렵이었을 거다.
이후 공부 머리 다 가져간 동생을 탓하며 영원히 이해 못할 문제집들을 붙잡고 씨름하던 수험생 시절을 졸업하고 20대가 되자, 이제는 민감하게 유행을 읽고 꾸미는 센스나 손쉽게 연애하는 기술, 밤새 음주가무를 즐기는 강철체력조차 내 것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다. 얼렁뚱땅 만든 두어편의 단편은 공개도 못했는데, 영화학교 시험은 떨어지고, 아르바이트 자리조차 더 구할 수 없게 되었을 땐, 영화에 대한 오랜 애정이 곧 만드는 재능으로 이어지진 않는다는 걸 깨닫고 영혼이 산산조각 났다. 그때 있는 돈 없는 돈 다 털어 무작정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에 오른 이유는, 나름 홀리한 길이니 걷다보면 불현듯 강력한 영화적 능력이 내게 임하시거나, 적어도 내 진짜 재능의 냄새 정도는 맡을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정말이지 절박했다. 그러나 마지막 희망을 걸고 하루에 30km 이상을 물집 하나 없이 깔끔하게 걸으며 한달도 채 못 돼 산티아고에 도착한 뒤 발견한 내 유일한 재능은, 오랫동안 부지런히 아주 잘 걷는 능력뿐이었다. 길 위의 친구들은 이젠 정말 인생의 방향을 찾고 싶다는 내게 히말라야에 가서 셰르파가 되라고 권했지만, 추위에 지독히 약한 나는 울면서 고국으로 돌아왔다.
그런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한 내가 글을 쓰고, 영화를 만든다는 게 아직도 낯설고 이상하다. 다만 나 같은 사람이 이런 일을 할 수 있게 된 건, 어쩌면 재능 찾기를 완전히 포기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요즘 가끔 한다. 살아생전 천재성을 화려하게 꽃피우며 미친 주목받을 일은 결코 없을 거란 걸 알게 된 뒤, 내게 정말 필요한 건 재능이 아니라 용기였다는 걸 알게 되었다. 매일 할 수 있는 일을 하며 딱 한 발짝씩만 앞으로 나아가는 용기.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알 수 없지만 이 길이 설레고 즐겁다면 결국 좋은 곳에 도달하리라 믿어보는 용기. 오늘도 그런 마음으로 여전히 치솟는 내면의 불안과 두려움을 애써 다스리며, 아무튼 용기 내어 영화를 하고 있다. 같은 마음으로 이 칼럼도 연재하기 시작했다.
두해 동안 한달에 한번 마감과 씨름하며 우당탕탕 열심히 걸어왔다. 무려 스물다섯 꼭지의 글을 쓸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준 <씨네21>과 읽어주신 독자분들께 진심어린 감사를 전하고 싶다. 내 목소리를 낸다는 것의 깊은 책임감과 즐거움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행복한 시간이었고, 새로운 곳을 향해 계속 나아갈 힘도 얻었다. 다시 부지런히 걸을 시간이다. 특별한 재능이 없어도 이젠 정말 괜찮을 것 같다. 어쨌든 나는 오래 걷는 재주만큼은 끝내주니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