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학번역원에서 해외에 거주하는 한인 디아스포라 작가들을 초대하여 작품과 삶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문학축제가 열렸다. 여러 소주제들의 포럼이 열렸고 그중 “왜 쓰는가”를 주제로 진행된 포럼에 사회자로 참여하게 됐다.
왜 쓰는가. 나 자신에게 줄곧 물어온 질문이기도 하다. 질문은 하나이지만 답은 매번 달랐다. 답이 매번 다르다보니 어쩌면 왜 쓰는가에 대한 정해진 답은 없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답은 분명 있다. 나는 쓰지 않는 사람일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매일매일 뭔가를 쓰는 사람이 되었다.
지금이라도 쓰는 것을 멈출 수 있을까? 있다. 하지만 무언가가 계속 쓰라고 내게 명령한다. 그 무언가에 대한 이야기를 일본, 덴마크, 한국에서 온 작가들이 함께 이야기했다. 다들 고통스러운 삶을 겪었고 그 고통과의 투쟁에 글쓰기가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다.
한 작가는 자신의 깊은 상처를 드러냈다. 그녀는 눈물을 흘렸다. 감정에 북받쳐 낭독을 이어갈 수 없었다. 그러자 다른 작가가 양해를 구하고 대독을 해주었다. 마야 리 랑그바드, 대독을 한 작가의 이름이다. 그녀는 덴마크로 입양됐고 입양아 문제를 다룬 시집을 출간했다. 그녀의 시는 설문의 형태를 띠었다.
“친부모에게 연락한 것을 후회하는가?” “입양된 사실에 화가 날 경우 그 화는 누구를 향하는가? a. 친부모? b. 양어머니? c. 너의 입양을 처리한 한국의 입양기관? d. 너의 입양을 처리한 덴마크의 입양기관?” 평범한 설문 같았지만 읽는 동안 마음이 아팠다. 그 시는 세상에서 가장 슬픈 설문지 같았다.
눈물을 흘린 작가는 최실, 재일교포 소설가였다. 그녀는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않은 비밀을 그 자리에서 공개적으로 고백했다. 자신이 성폭행을 당했고 그 고통을 극복하기 위해 글을 쓰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나는 일어나기로 마음먹고 이야기를 썼다. 인종차별, 폭력, 성적학대를 당하는 한 여자아이에 관한 이야기였다.… 작가들은… 내가 자신의 목소리가 없는 줄 알고 있을 때 목소리를 주었다.” 청중은 그녀의 발언에 지지와 연대의 표현으로 박수를 쳤다.
한국에서 태어나 살아온 소설가 강영숙이 준비해온 글을 읽었다. “외로운 사람들, 밀려난 사람들, 경계에 서 있는 사람들은 그 고통의 대가로 사유의 힘을 얻는다.” 그녀의 말은 고통과 고통을 극복하는 글쓰기에 대한 그날의 이야기를 갈무리해주었다.
“한인 디아스포라 작가”라는 범주가 과연 필요할까? 그 범주가 작가들이 겪는 고유한 삶과 쓰기를 담아낼 수 있을까? 작가들은 각자의 언어로 고향에서 벗어나고 고향으로 돌아가기를 반복했다. 그날의 대화에서 자주 등장한 단어는 “모순”이었다. 모순의 영어는 ‘contradiction’이고 그 어원에는 “무엇에 반해서 말한다”는 뜻이 담겨 있다.
그들은 쓰기를 통해 고향에 반하는 고향을, 익숙하면서 낯선, 끔찍하면서 아름다운 자신만의 고향을 발견해 나갔다. “왜 쓰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그날의 답은 이러했다. 떠나기 위해서, 그리고 끝내 돌아가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