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양떼목장에 놀러갔던 때의 일이다. 야트막한 언덕에 나무 하나가 서 있는데, 왜인지 그 나무를 향해 여자를 업고 가는 남자들이 있었다. 버뮤다의 삼각지대 같은 곳이라 부상자가 연쇄적으로 발생하나 했으나, 알고 보니 드라마 <가을동화>에서 주인공을 연기한 송승헌이 송혜교를 업고 가는 장면을 그곳에서 찍었단다. 이런 ‘유명한’ 나무들은 곳곳에 있기 마련이며 한번 유명세를 얻으면 여간해서는 베어내지 않는다. 여행을 다녀보면 관광명소에 유명한 나무가 있는 경우가 드물지 않은데, 영국의 경우는 “이게 바로 윌리엄 월리스가 추종자들을 모았던 참나무입니다”(<브레이브 하트>가 월리스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다.) 같은 이야기의 무대가 되는 나무들이 있단다. 옥스퍼드대학교 영문학 교수 피오나 스태퍼드는 <길고 긴 나무의 삶>에서 나무의 이야기를 문학과 신화, 예술로 읽어냈다.
챕터 제목은 나무 이름이다. 벚나무, 마가목, 올리브나무, 사이프러스, 참나무, 물푸레나무, 버드나무, 산사나무…. 나무 본연의 생태에 대한 이야기 외에도 신화의 주인공으로, 소설과 시의 영감으로 나무가 어떤 영향을 끼쳐왔는지를 다룬다. 고대 지중해 지역에서 올리브 나무의 가장 소중한 특징은 기름 생산. 제라드 맨리 홉킨스는 하느님의 위엄을 표현하며 신의 영광이 “눌리어/ 스며 나오는 기름처럼, 위대함으로” 모인다고 묘사했다. 올리브나무는 이슬람 세계에서도 신성한데, 반투명한 금빛 올리브유가 알라신의 신성한 빛을 반영한다고 믿어서다. 평범하지만 어떤 곳에서나 잘 자라서 유럽에서 전세계로 퍼져나간 시커모어는 여행을 많이 한 나무이기도 하다. 1971년 아폴로 14호의 승무원 중 한명은 대기권 밖으로 시커모어 씨앗을 가져갔다 되돌아와 심은 뒤 여전히 잘 자라는지를 관찰하기도 했다(40여년이 지난 지금도 잘 자라고 있다). 호랑가시나무는 품종이 워낙 다양한데, 그래서인지 별명도 많다. ‘황금빛 우유 짜는 처녀’, ‘달빛 호랑가시’, ‘가죽 이파리’ 등이 그것인데, ‘골든 퀸’과 ‘실버 퀸’은 둘 다 수컷 나무고 ‘골든 킹’과 ‘실버 밀크보이’는 둘 다 암컷 나무다.
나무에 대해 읽는 것뿐인데도 산책하는 기분이 든다. 제목의 ‘길고 긴’ 나무의 삶이란 한 그루의 나무가 싹을 틔우는 순간부터 죽는 순간까지를 말하기도 하지만 죽은 이후에도 문화 속에서 살아가는 모습을 뜻하는 것이리라. <가디언> 리뷰의 “이 책을 하루에 한장씩 읽는다면 모든 불안이 달아날 것이다”라는 문장이 뒤표지에 인용되었는데 실로 그럴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