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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21 추천도서 <부끄러움>
이다혜 사진 오계옥 2019-05-21

<부끄러움> 아니 에르노 지음 / 비채 펴냄

“5월 어느 일요일 정오가 지났을 무렵, 아버지는 어머니를 죽이려고 했다.” 1952년. 소설가 아니 에르노의 소설 <부끄러움>의 첫 문장이다. “경험하지 않은 것은 쓰지 않는다”는 에르노의 12살 때의 기억(그는 1940년생이다). ‘그 사건’, 그러니까 아버지 손에 전지용 낫이 들려 있었고 어머니가 비명을 지르던 그 순간은 에르노에게 깊이 각인되었다. <부끄러움>이 1997년에 발표된 소설이니 45년이 지나서야 꺼내보는 기억이다. “내 유년 시절의 정확하고 분명한 첫 번째 날.” 아니 에르노는 그 시기를 추억에서도 끄집어내지만 도서관에 가서 당시의 신문을 찾아보기도 한다. 세상에서 일어난 일, 어렸던 자신이 기억하는 일. 옛날 물건들을 꺼내보고, 지금은 상상할 수 없지만 실재했던 12살의 나날을 복구한다. “당시의 내 현실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나를 가두었던 환경, 학교, 가족, 시골 마을의 의미를 규정하는 동시에, 미처 그 모순을 눈치채지 못했지만 내 삶을 좌우했던 법칙, 의식, 믿음, 가치를 찾아보는 것 외에 달리 확인할 길이 없다.” 모순덩어리던 나날. 편견에 가득 찬 소도시의 사람들. 일상사나 행동은 선과 악, 허용된 것 혹은 권장된 것과 금지된 것이라는 범주로 분류되었던 나날. 종교가 중요했던 시기. 성차별을 자연스럽게 학습하게 만들던 언어적이고 문화적인 관습들. 특히나 어린 나이에 자신이 속한 계급에 대한 자각이 이루어지는 순간을 훗날 글을 통해 발견하는 순간들이 눈길을 끈다. 가난이 만들어낸 어떤 습관들과 문화들. 그것이 타인의 눈에 노출되는 순간의 참담함. 130쪽 정도의 분량이지만, 이 소설로 어렸던 아니 에르노와 그가 살던 사회가 보인다. 놀랍지도 않게 그날의 사건은 어머니와 아버지의 관계에 별 영향을 주지 않았다. 영향을 받은 사람은 아니 에르노였다. 아니 에르노의 독자들에게는 굉장히 의미 있는 독서 경험을 제공할 책.

실수

훗날 몇몇 남자들에게 나는 “내가 12살쯤에 아버지가 어머니를 죽이려고 했었어”라고 말한 적이 있다. 내가 이 문장을 말하고 싶었다는 것은 그들을 무척 사랑했다는 의미였다. 그 남자들은 이 말을 듣고는 모두 입을 굳게 다물었다. 나는 내가 실수했고, 그들은 이 말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2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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