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스북에는 ‘0년 전 당신은’이라는 기능이 있어서 아침마다 부탁도 안 했는데 몇년 전 내가 올린 글이나 사진을 보여준다. 몇년 전 발췌해두었던 글을 얼마 전 페이스북이 다시 보여주었는데, 신기하게도 이번 북엔즈에서 소개하는 소설 중 일부였다. 권여선의 <무릎> 중 ‘어떤 삶은 이유 없이 가혹한데, 그 속에서 우리는 가련한 벌레처럼 가혹한 줄도 모르고 살아간다’는 문장이었다. 당시 얼마나 비관주의에 빠져 있었던 건지 모르겠는데, 그 문장이 실린 소설을 이번에 다시 읽으며 불행한 나날 속에서 그럼에도 살아가는 사람들의 꿋꿋함을 발견했다. 살인사건에서 시작한 <레몬>은 그 여파로 망가진 삶들을 보여주지만 불행만을 포착하지 않고 그 안에서 점차 레몬의 빛을 발견해간다. 오랜 간격을 두고 연재되었던 소설인 만큼 삶과 희망의 의미를 터무니없이 제시하지 않고 시간의 흐름 속에서 찬찬히 꺼내 보여서 더욱 미더운 소설이다. 편혜영의 소설집 <소년이로>에는 8편의 소설이 실려 있다. 내일 무슨 일이 생길지 장담할 수 없는 매일을 살면서 우리는 내 삶의 통제권을 내가 갖고 있는 것처럼 착각한다. 어떤 불행은 느리게 거실에 스며들고, 또 어떤 불행은 교통사고처럼 갑작스레 들이닥친다. 편혜영은 종래에 드러나는 진실의 끄트머리를 꺼내 보인다. <바닷마을 다이어리>의 긴 일기장이 마침표를 찍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영화화했던 요시다 아키미의 만화는 가마쿠라에 사는 네 자매의 일상을 생생히 그린다. 분명 앞으로도 울 일은 많이 있겠지만 어깨를 기대며 함께 살아갈 바닷마을의 일기장을 마지막까지 지켜보자.
홀로코스트라는,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가장 고통스러운 시간을 통과했음에도 여전히 세상에 대한 신뢰를 잃지 않고 매일 사랑할 것을 발견하는 인간의 기록을 담은 <아우슈비츠의 문신가>는 불행이 우리의 존엄을 무너뜨릴 수 없음을 증명한다. 아버지가 어머니를 죽이려했다, 라는 충격적인 문장으로 시작하는 아니 에르노의 <부끄러움>은 문화와 관습이 어린 시절에 미친 영향을 그린다. 계급과 가난이 타인 앞에서 발가벗겨질 때의 참담함을 실낱같이 그림으로써 사회상까지 읽히는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