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들뜨지 않으려고 한다.” 봉준호 감독과 첫 촬영, 칸국제영화제 초청까지 이어지면서 <기생충>은 베테랑 배우 이선균에게도 낯설고 새로운 긴장을 많이 선사하는 작품이다. 봉준호 월드 안에서 보자면 이선균은 기존에 없던 카드다. 봉준호 감독이 찍으며 즐거웠다고 말한, 고급 세단 안의 이선균의 옆모습, 세련된 신흥 재벌 박 사장의 모습은 봉준호 감독에게도 사뭇 새로운 묘사다. “<살인의 추억>(2003)을 좋아했다”는 이선균은 “심플한데 먹먹하고 기괴함이 담긴 놀라운 시나리오, 마치 찰리 채플린의 표정 같은 희비극”이라고 <기생충>을 설명한다.

-아직까지 봉준호 감독과 작업한 적 없다는 게 오히려 의외라고 해야 할까.

=봉 감독님은 했던 분들과 주로 하셔서 나는 어느 정도 마음을 접어왔다. 캐스팅이 유력하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는데, 그때도 큰 기대는 안 했었다. 여러 배우 중 한명으로 물망에 오른 거겠지, 애써 태연한 척했는데도 심장은 두근거렸다. (웃음) 첫 촬영날은 신인 시절 촬영 때의 긴장감을 맛봤다.

-작품 경력이 많은 배우에게도 큰 긴장을 안길 정도의 현장이라니, 실제 접해본 현장은 어땠나.

=물론 첫날만 그랬고, 계속 그런 기분이면 영화 못 찍었겠지. (웃음) 처음에 와이프 연교(조여정)와 나누는 대사가 서로 존댓말이었는데, 감독님이 그러시더라. “둘이 대학 때부터 만나 결혼한 사이인데 야자 하면서 가는 게 좋지 않을까요.” 슛 들어가기 전에! (웃음) 내가 생각했던 캐릭터가 싹 바뀐 거다. 아, 어떡해야 하지. 그다음부터는 미리 준비를 안 했다. 촬영 첫날 내 생각이 무너지고 나니, 편해지더라. 감독님이 일부러 그렇게 하신 건지. 너무 욕심내고 계획 짜지 말라고. (웃음)

-박 사장은 봉준호 월드 안에서는 자주 묘사되지 않았던, 현실 부자 캐릭터다.

=기존 부자와는 달랐다. 극중 나나 아내 모두 악인이 아니다. 환경이 다를 뿐 가정에 충실하고 사람들을 잘 대하고 굉장히 열심히 살려고 하는 인물이다. 그런데 너무 다른 두 가족이 모이면서 불협화음이 생긴다. 박 사장이 자주 하는 말 중 하나가 “선을 넘는 거 되게 싫어한다”는 것이다. 이 사회의 보이지 않는 선, 박 사장은 그런 것에 강박이 있는 인물이다. 누군가가 그 선을 넘어오는 걸 못 견뎌한다. 그런데 이런 걸 뭐라고 하는 것조차 자신이 젠틀하게 보이지 않으니 조심하는, 정말 좁디좁은 사람. 쪼잔하고 치졸하고, 그래서 보고 있으면 웃기다.

-막강한 부를 소유한 IT업계 대표를 어떤 비주얼과 동작을 하는 인물로 묘사하려 했나.

=IT업계 대표니 나는 스티브 잡스를 떠올려 편하게 청바지 차림을 생각했는데, 집도 너무 럭셔리하고 의상도 명품 정장들이더라. 내가 부티가 안 나 보여서 일부러 더 입히신 것 같기도 하고. (웃음) 특별한 동작을 고안하기보다, 감독님이 콘티에 정말 정확하게 표현을 해놓으셨다.

-장르 안에서도, 전형적인 것에서 벗어난 미세한 디테일들을 표현한다는 점에서 굉장히 모던한 연기가 예상된다.

=한정된 공간에 배역들이 1/N의 자기 몫을 다 하고 있어서 굉장히 연극 같은 느낌이라, 나중에 연극으로 만들어도 좋겠다고 배우들끼리 말한 적도 있다. 다른 캐릭터들은 싱크로율이 잘 맞는데, 나는 기존과 캐릭터를 완전히 바꿔서 잡거나 그러지는 않았다. 내가 캐릭터를 잘 바꾸고 그런 스타일이 아니기도 하고. 나는 나한테 맞게 박 사장을 표현했지만, 내 역할은 어떤 배우가 하느냐에 따라 톤이 굉장히 달라질 것 같다.

-최근 연달아 작품을 하면서 흥행에서 고배를 맛보기도 하고, 작품 외적으로 논란이 되기도 했다. 이번 작품은 또 어떤 의미로 정의할 수 있을까.

=연기를 쉼 없이 하고 있는데 늘 어렵다. 다운되고 힘들어서 좀 쉴까 하다가도 같이 작업하고 싶은 분들의 작품이 연달아 들어오자, 고민하지 말고 열심히 하라는 것으로 여기고 참여했다. 여러 부진한 결과에도 배우로서는 매번 흥미롭고 보람 있는 작업이었다. 그동안 부담이 큰 작업들이 많았다면, 이 영화를 하면서는 패키지여행 다녀온 기분이 들 정도로 편했다. 좋은 가이드가 계속 안내를 해주면서 여행하는 기분과 비슷했다. 촬영 없는 날도 매일 현장에 가서 함께 붙어 있어서 그런 것도 있고. 그래서 나중에는 내가 너무 적극적으로 임하지 않았나, 다음에 안 불러주는 거 아닌가. 좀더 열심히 할걸 하는 생각도 든다. (웃음)

-<끝까지 간다>(2013)로 칸국제영화제 초청받았을 때는 가지 않았으니, 칸 레드카펫은 이번이 처음이다.

=워낙 다른 분들이 레드카펫에 익숙하셔서. (웃음) 나는 지금 <킹메이커: 선거판의 여우>를 찍고 있는 중인데 레드카펫 때문에 현장 스케줄을 바꿔야 하니, 미안한 마음에 조용히 있다. <기생충>은 아직 내가 나온 부분만 봤는데, 영화가 재밌더라. (웃음) 어떤 반응일지 무척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