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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3인을 만나다②] <무구함과 소보로> 시인 임지은 - 여성이 화자로 전면에 등장하기를, 새롭고 방대하기를
이다혜 사진 오계옥 2019-05-09

임지은의 시와 현실 사이에는 아주 얇은 막이 있다. 그 막을 통과하면 어떤 것도 전과 같지 않다. 시간 감각이 혼란스러워지고, 경계가 사라져 질문이 질문을 낳는다. 본 대로 읽으라는 말에 “woowoolhae”라고 우물거리고 “미안해, 행복해지고 싶어”라고 덧붙인다. 임지은의 시가 영토로 삼은 곳은 우리가 잘 아는 매일의 시간, 거기에 음악적인 언어의 기쁨이 더해진다. ‘소보로’라는 단어와 어울리는 말이 ‘무’로 시작해야 할 것 같았고, ‘무’로 시작되는 단어 중 ‘무구함’이 음악적으로 어울리게 느껴졌다는, 임지은 시인을 만났다.

-어디에서 시를 쓰나.

=커피숍 아니면 카페형 독서실을 끊어서 작업한다. 매일매일 쓰려고 한다. 되든 안 되든 4~5시간 정도는 앉아 있는다. 특별한 일 없으면 주말에도 하려고 한다. 6살 된 아이가 있어서 다른 일에는 시간을 거의 내지 못한다. 그래서 악착같이 나간다.

-등단했던 때가 출산한 시기와 거의 겹치는 것 같다.

=<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 최종심에 여러 번 올랐었다. 한번은 투고하고 애를 낳으러 갔다. 최종 2명에는 들었는데 내가 떨어졌다. 그리고 한동안 못 쓰다가, 2015년 초에 남편에게 안 하면 후회할 것 같다고 하고 새벽에 나와서 커피숍에서 시를 썼다. 주말에는 남편이 하루 종일 아이 보고. 세 달 동안 10편을 써야 하니까 죽어라고 썼다. 그런데 그게 됐다.

-함께 시작한 친구가 있었나.

=포기 안 하고 계속 쓰던 친구들이 있었다. 내가 등단하고 그 친구들도 하나둘씩 등단했다. 창비로 등단한 한연희 시인이라고 있는데 둘이 계속 스터디를 했다. 일주일에 두편씩 썼다. 그렇게 5년 됐을 때 등단했다. 원래 대학 진학을 자연과학부로 했다가 문예창작과로 전과한 경우인데, 문창과 가니까 말이 통하는 친구들이 있어서 좋았다.

-시를 쓰고자 한다는 것, 시인이라고 스스로를 부르는 것, 시인으로 등단한다는 것, 첫 시집을 낸다는 것이 다 다른 의미인가, 같은 의미인가.

=졸업하고는 몇년만 쓰면 바로 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오히려 학교 다닐 때만큼 자유가 주어지니까 안 쓰게 되더라. 대학원을 갔는데 같이 공부할 수 있는 학생들이 너무 없었다. 그리고 슬럼프에 빠졌다. 취직한 친구들을 만나면 글 얘기가 금기였다. 나도 남들 하는 것처럼 살려고 논문 안 쓰고 행정 조교 일을 했다. 시도 안 쓰고. 그렇게 살았는데 여기저기 아프고 재미가 없었다. 우울증이었다. 시에도 있는데(<함묵증>), 여기저기 병원을 가기 시작했다. 그때마다 처방을 받았는데 나아지는 게 없었다.

-신병 같은 건가. (웃음)

=나는 내가 굉장히 밝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우울증이었다. 하고 싶은 걸 외면해서 이런가보다 했다. 너무 어려워서 매일 커피숍 가서 화면만 보고 있었다. 거기부터 시작해서 5년 정도 걸렸다. ‘나도 시인이 될 거야. 나도 시집이 있어야겠어’ 하는 생각이 일을 그르쳤다고 생각했다. 나는 시를 매일매일 쓸 건데 10년, 20년 후까지 포기하지 않고 할 수 있을까 했다. 등단하지 않고 계속 시를 쓸 때 남편이 나를 시인 대접을 해줬다. 쓰다보면 되겠지 생각해서 쓰다보니 등단이 되었다. 그리고 쓰다보니 시집을 내도 되겠다 싶어 냈다. 그런 생각이 길게 쓰는데, 평정심을 갖게 도와주는 것 같다.

-임지은 시인의 시는 특유의 생동감이랄까 현실감이 특히 좋았다. 일상에서 경험한 장면들이 스쳐지나가는 듯한 느낌이 있다.

=시와 산문의 차이라면, 나는 형식보다 내용에 있다고 생각한다. 시에는 비약이 있어야 하는데 산문은 타당성이나 인과율을 글로 설명해야 한다. 나는 전부 설명하려 하면 재미가 없다. 시를 쓸 때 아름다움이나 섬세함이 아니라 일어났던 일을 시로 써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일상생활에서 내가 한 말을 쓰고 싶다고 생각한다. <바코드>도 여권 만들러 갔다가 있었던 일을 썼고, <소년 주머니>도 아파트에서 우는 남자아이의 집을 찾아준 일을 모티브로 해서 썼다. 어떻게 시적으로 마무리할까를 고민한다.

-시집을 엮을 때 미발표작도 넣었나.

=내가 신인문학상에서 떨어졌던 이유가, ‘너무 안정적으로 쓴다’였다. 신인의 패기가 덜 보인다고. 습작을 오래하니까 몸에 밴 것이다. 그걸 무너뜨리려고 노력했는데 안정적으로 만든 뒤 빼내는 작업을 하다보니, 나중에는 빼지 않아도 바로 나오게 되더라. 한단계 깨우친 거다. 그러고 나니 전에 쓴 시들이 너무 못 썼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 등단하고 전부 새로 썼다.

-시에서 엄마도 할머니도 시적 화자의 연장선에 있는 미래의 존재 같은 이미지를 갖고 있다. 중첩되는 이미지로 존재하는 여러 연령대의 여성상처럼.

=내 얘기를 쓰지만 나를 최대한 드러내지 않으려고 한다. 객관화하거나 타인화하려는 편인데 가족과 관련한 시를 쓸 때는 완전히 지울 수는 없으니까. <무서운 이야기>는 박막례 할머니 유튜브를 보다가 쓰게 된 시다. 납량특집으로 귀신 얘기를 하다가, 박막례 할머니가 이게 뭐가 무섭냐는 거다. 자기는 배우지도 못했고, 여행도 못 가봤고, 밭일만 하며 살았다고. 이런 게 얼마나 무서운 일이냐는 말을 들으며 생각하니 나를 길러준 할머니도 한글을 쓸 줄 몰랐다. 우리 시대 여자들에게는 그러면 뭐가 무서울까를 떠올렸다. 어떤 독자분이 주부라고 하시면서 <깨부수기>를 읽고는 주부인 친구들에게 널리널리 알려야겠다고 한 일이 있다. 나는 내가 남자가 아니길 다행이었다고 생각한다. 여자가 전면적인 화자로 나오게 하면서 새로웠으면 하는 마음으로 쓴다.

-좋아하는 시인은 누구인가.

=대학 때 많은 시집을 통과하듯이 읽었다. 너무 많은 시인을 좋아했고, 내 것으로 만들어가며 읽으려고 했다. 방황하던 때 김행숙 시인의 <사춘기>라는 시집이 나와서, ‘이렇게 쓸 수 있는데 왜 나는 아름답게만 쓰려고 했지?’ 싶었던 기억이 있다. 저렇게까지 써보고 싶다는 건 김혜순 시인. 시가 방대하고 늙지 않는다는 느낌이 존경스러웠다. 나도 그렇게 쓰고 싶다.

● 내 인생의 영화_ 충격을 받기 위해 영화를 보는 경우가 많다. <겟 아웃> <인셉션> <인터스텔라>처럼 전개가 일반적이지 않은 영화를 좋아한다. 시간을 다룬 영화들을 좋아했다. 그런데 남편이 “<캡틴 아메리카>네” 하더라. (웃음) 스티브 로저스(크리스 에반스)라는 캐릭터를 좋아한다. 70년이 지난 후에 깨어나서 자기가 전혀 모르는 세계에 떨어진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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