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우연한 기회에 글쓰기 관련 특강을 한 꼭지 맡아 하게 됐다. 글쓰기라니, 내가 들어야 할 강의인데 나 같은 사람이 무슨 강의를 하나 뒤늦은 후회를 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이제 와서 감독을 꿈꾸게 된 멋진 계기나 나만의 창작론 같은 걸 만들어낼 수도 없고 해서, 그냥 수업 내내 실상 나라는 사람이 예술과 글쓰기와 얼마나 거리가 먼 사람인지, 그런 평범하고 별 볼 일 없는 내가 삶의 크고 작은 사건들을 겪으며 어떻게 자전적 경험을 바탕으로 한 창작을 시작하게 됐는지, 그래서 아직도 내게 글쓰기가 얼마나 어렵고 또 어떤 고민들이 있는지 등을 구구절절 풀어놓았다. 이 애매하고도 은밀한 고백은 열심히 눈을 밝히고 귀를 기울이며 더 큰 이야기를 나눠준 수강생분들 덕분에 다행히 조금은 덜 부끄러운 것이 되었고 또 조금은 더 의미있어지기도 했다. 사람들 앞에서 어떻든 나 자신을 고백할 수 있게 된 이런 상황이 조금 자랑스럽기도 했다.
그런데 수업 말미에 한 수강생이 조심스레 던진 신중한 질문이 나를 완전히 흔들어놓았다. 그녀는 떨리는 눈빛으로, 누구나 살면서 너무 힘들고 아픈 일을 겪으면 내면이 완전히 변하는 일도 있지 않느냐고, 그런데 어떻게 그런 상처들을 재료로 창작까지 할 수 있느냐고, 어떻게 그렇게 다시 괜찮아질 수 있느냐고 진심을 다해 물었다. 영혼이 털썩 주저앉는 느낌이 들어 한동안 멍했다. 할 수 있는 대답은 이것뿐이었다. “사실 정말로 괜찮지는 않아요. 이렇게 세월이 지났는데도 아직도 많이 아프고, 슬프고, 힘이 들어요. 아직 전혀 안 괜찮아요.”
정말 그렇다. 아직도 괜찮지 않다. 다 괜찮아진 듯 웃고 떠들면서 의욕 넘치게 잘 살다가도 한순간 내면의 트리거(방아쇠)가 당겨지면 마비된 듯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사실 내 영혼은 완전히 망가진 게 아닐까 불안과 공포에 휩싸인다. 때론 어떻게든 괜찮아지고 싶어서 별별 방법을 다 써보기도 한다. 전혀 아프지 않은 척도 해보고, 내 상처 좀 봐달라고 막무가내로 소리도 질러보고, 시간이 지나 다 아물었으니 이제 괜찮을 거라고 믿어보기도 한다. 하지만 상처는 여전히 상처로 남아서 나도 모르는 사이 불현듯 다시 깊은 통증을 유발한다. 그리고 언제까지고 여기서 벗어날 수 없을 거라는 걸 알아차리고 절망하게 된다. 이런 반복되는 트라우마의 굴레 안에서 그나마 유일하게 위로가 되는 건 나만 아픈 건 아니라는 것을 아는 거다. 누구나 저마다 크고 작은 삶의 고통을 안고 살아가고 있으니 나도 내 몫의 고통을 안고 살아가도 괜찮을지 모른다는 작은 희망. 그러니 소리 내어 말하지 않으면 절대 알 수 없을 내 몫의 상처와 통증을 타인과 나누고, 타인의 괴로움과 절망을 이해하고, 그렇게 서로의 삶에 목격자가 되어주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우리는 모두 혼자지만 또한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될 때, 어쨌든 다시 살아갈 힘이 조금은 생기니깐. 어쩌면 나는 글쓰기가, 또 예술이 사람들에게 그런 도움을 줘야 한다고 믿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올해로 세월호 사건이 5주기를 맞았다. 5년밖에 지나지 않았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그간 많은 일들이 일어났지만 해결된 건 아무것도 없고 아무도 괜찮지 않다. 그런데 대체 뭐가 ‘지겹다’는 건지, 누가 ‘징하게 해쳐먹는다’는 건지 알 수가 없다. 계속 말해야 한다. 여전히 아프고, 힘들고, 아직 괜찮지 않다는 걸. 모두가 알고 함께 나누어야 한다. 그래야 다시 살아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