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근한 풍채의 눈사람이 살아나고, 그와 함께 하늘을 날아 환상의 여행을 떠나는 소년의 꿈을 기억하는지. 이언 하비는 해외는 물론 국내에도 비디오로 소개돼 꾸준한 인기를 누려온 영국 애니메이션 <스노우맨>의 프로듀서다. 영국의 대표적인 동화 작가 레이몬드 브릭스의 원작에 바탕한 <스노우맨>과 <산타할아버지의 휴가>, 에릭 칼의 원작을 살려낸<배고픈 애벌레> 등 주로 동화를 애니메이션의 상상력으로 움직인 작품을 만들어왔다. 이번 영화제의 ‘전쟁과 애니메이션’에 소개된 장편 <바람이 불 때>와 단편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경기> 역시 그의 손을 거친 애니메이션.
전쟁에 대한 우회적인 경고를 담은 2편의 작품과 함께 전주를 찾은 그는, 은빛 수염 아래로 자신이 제작해온 작품들 만큼 아이같은 미소를 띄우곤 했다. <지상에서…>는 전쟁 중에 크리스마스를 맞이한 영국, 독일의 젊은 병사들이 전투 대신 축구 경기를 벌인 실화에 바탕한 애니메이션. “전쟁이 아예 존재하지 않길 바란다”는 그는, 전쟁의 폭력성을 아이들의 눈에 맞게 풀어내고 싶어서 <지상에서…>를 제작하게 됐다고. 그의 제작사 일루미네이티드 필름즈에서는 <지상에서…>를 시작으로 전쟁 3부작을 기획하고 있다. 하비는 해미쉬 해밀턴 출판사에서 판권 계약을 담당하던 80년대 초반, <스노우맨>을 애니메이션으로 기획하던 프로듀서 존 코츠를 만나면서 “자신도 모르게” 진로를 바꿨다. 전주에서 만난 관객과 애니메이션 관계자들을 통해 “새삼 애니메이션에 대한 열정을 되새길 수 있었다”고.
황혜림 ▶ 씨네21 [2002전주데일리]홈페이지로 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