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들리 스콧의 <블레이드 러너>(1982)에서 핵전쟁 이후 혼돈과 무질서에 휩싸인 미래의 시간은 바로 올해인 2019년이었다. 은퇴한 블레이드 러너였던 데커드(해리슨 포드)는 지구에 잠입한 복제인간 리플리컨트들을 찾는 임무와 함께 강제로 복직하게 되고, 탐문 수사를 위해 찾아간 타이렐사에서 자신이 복제인간임을 모르는 레이첼(숀 영)을 마주하게 된다. 리플 리컨트는 물론 지금도 기술적으로 구현되지 않은 각종 전자기기와 교통수단이 등장하지만, 지금 2019년의 시점에서 영화를 다시 보자면 디테일하게 내다보지 못한, 기술의 발전과 무관한 미래의 모습도 볼 수 있다. 가령 사람들은 여전히 실내에서 담배를 피우고 종이신문을 읽고 있다. 모든 것이 암울하게 바뀌어버린 미래에, 그런 오프라인 종이 매체의 촉감이 괜히 반가웠다고나 할까.
진짜 2019년이 된 올해, 이번호 특집은 ‘5G 시대의 충무로’다. 장영엽, 김성훈 기자가 기획회의 때 5G급 속도로 아이템을 제안했고, 무엇보다 그 제목에 꽂혀 특집 기사가 진행됐다(하지만 마감 속도가 3G급인 건 별개의 일이다). 그렇게 지난 4월3일 우리나라가 세계 최초로 5G 상용화를 시작했다. 숫자 5에 G(Generation)가 더해진 것으로 이동통신의 다섯 번째 세대라는 뜻이다. 2011년 상용화된 4G LTE보다 (그 기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지만 어쨌건) 최대 1300배 빠른 기가급 무선 인터넷이 가능한 이동통신 기술이다. 풀HD 화질 영화도 불과 몇초 만에 스마트폰으로 다운로드할 수 있으니, 초고화질 영상 콘텐츠의 새로운 길이 열리게 된 셈이다. 그 결과 단지 속도 문제뿐만 아니라 교통관제시스템이나 건물관리 시스템, 더 나아가 자율주행자동차와 실시간 AR/VR은 물론 재난 안전 등 여러 예측 시스템까지 일대 변혁을 맞을 것으로 보인다. 한국영화 현장 또한 마찬가지다. 의 가장 오래된 인터뷰 코너 중 하나가 바로 한국영화계의 여러 기술 스탭들을 만나는 ‘영화人’인데, 매번 ‘THAT’S IT’이라는 박스로 그들의 직업적인 비장의 아이템을 묻곤 한다. 4색 볼펜부터 부적까지 갖가지 아이템이 등장하는데, 종종 특정 스마트폰 앱을 영화 현장에서 사용한다는 몇몇 스탭들은 본격적인 5G 시대가 도래하면, 한국영화 촬영현장이 급속도로 바뀔 것이라 예견하곤 했다. 2013년 8월1일 개봉한 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가 필름으로 찍은 마지막 한국영화로 기록되어 있고, 2010년경부터 도입된 디지털 영사기도 필름 영사기의 자리를 완전히 대체했다. 지난해의 경우 이창동 감독의 8년 만의 신작 <버닝>(2018)이 알렉사 카메라로 촬영됐다는 것도 큰 화제였다. 더 나아가 ‘고프로’로 대표되는 초소형 광각 캠코더인 액션캠과 드론 촬영, 그리고 VR 영상까지 한국영화 깊숙이 들어왔다. 이제 카메라를 중심에 둔 촬영현장의 변화를 넘어, 5G로 인해 또 다른 변화의 순간과 맞닥뜨리게 될 것이다. 영화를 만드는 사람과 보는 사람 모두에게 5G 시대에 대한 작은 실마리라도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