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루소, 앤서니 루소 감독, 배우 브리 라슨,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제레미 레너(왼쪽부터).
마블 스튜디오의 주역들이 한국을 찾았다. <어벤져스: 엔드게임>의 제작자이자 마블 스튜디오 대표 케빈 파이기, 트린 트랜 프로듀서와 루소 형제 감독, 그리고 배우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브리 라슨, 제레미 레너는 지난 4월 14일부터 15일까지 서울에서 아시아 기자단과 만나 프레스 투어 일정을 소화하고 돌아갔다. 4월 15일 저녁에는 장충체육관에서 팬이벤트 행사를 갖기도 했다. 2008년 <아이언맨> 개봉 내한 행사 이후 네 번째로 한국을 찾은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는 팬이벤트 행사가 끝나고도 무대를 떠나지 않고 한참을 머물며 한국 관객에 대한 특별한 애정을 이야기하기도 했다. 이들이 서울에 머무는 동안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이 화제가 됐지만 영화에 관해서는 어떠한 팁도 남기지 않았다. 공개된 예고편과 포스터 등에서 유추할 수 있는 정보를 제외하면 <어벤져스: 엔드게임>은 여전히 베일에 싸여 있다. 4월 15일 오전 서울 포시즌즈 호텔에서 열렸던 내한 기자간담회에서 오간 대화를 바탕으로 <어벤져스: 엔드게임>의 스토리와 향후 마블 스튜디오의 전망에 대해 간략하게 짚어봤다.
스포일러와의 전쟁이다. <어벤져스: 엔드게임>은 최근의 할리우드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정보 공개를 꺼려왔다. 개봉을 불과 5개월여 앞두고 영화의 부제를 겨우 공개했고 사실상 공개된 예고편조차도 영화에 관해 별다른 정보를 주지 않아 지난해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2018) 개봉 이후 많은 팬들이 예상 시나리오를 창작해 예측 놀이를 하기도 했다. 그중 일부는 원작 코믹스의 스토리를 기반으로 제작진의 의도를 날카롭게 꿰뚫기도 했다. 물론 실제 영화와 일치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심지어 스파이더맨 역의 톰 홀랜드의 경우 제대로 된 대본조차 받아보지 못했고, 영화에 참여한 대부분의 배우들이 여러 버전의 장면을 촬영했으며 제작진은 어떤 장면이 영화에 쓰일지도 알려주지 않았다고 한다. 한국 기자단과 만난 기자회견 자리에서도 영화에 관해서는 일체 이야기하지 않겠다고 선을 그었다. 그럼에도 우연치 않게 말실수가 벌어지기도 했다. 타노스 역의 조시 브롤린과의 연기가 어땠느냐는 질문에 제레미 레너가 “나는 그와 촬영장에서 마주친 적이 없다”고, 즉 영화에서 타노스와 직접 마주치는 장면이 없을 수도 있다는 뉘앙스의 답변을 하는 순간 감독과 배우들의 표정이 사색이 되기도 했다. 그 정도의 정보 공개조차 극도로 꺼리는 것. 브리 라슨 역시 <캡틴 마블>에 이은 이번 영화에서의 활약을 묻는 질문에 “<캡틴 마블> 이전에 <어벤져스: 엔드게임>을 먼저 찍어서 영화 전체를 완전하게 이해하지 못한다. 내가 스스로 어떤 역할을 했는지 모른다”고 답하기도 했다.
#DontSpoilTheEndgame
그런데 하필 배우들이 한국을 떠난 이후, 4월 16일 오전에 해외에서 영화의 일부 하이라이트 영상을 불법촬영한 동영상이 유튜브를 통해 퍼져나가는 사고가 발생했다. 마블 스튜디오를 비롯해 감독과 배우들이 서둘러 진화에 나섰는데 SNS를 통해 불법영상은 물론 영화에 관한 어떠한 정보도 공유하지 않길 바라는 #DontSpoilTheEndgame 해시태그 운동을 펼치고 있다. 중국에서는 이미 예매 물량만으로 흥행 수익 2억위안을 돌파했고, 한국도 예매가 풀린 16일 오후 6시경부터 극장 사이트 서버가 다운되기도 했다. 4월 18일 현재 예매 물량만 100만장을 넘어서서 예매율 93.1%로 1위에 올랐다.
왜 타노스인가
우주의 만물을 이루는 6개의 인피니티 스톤이 모이자, 비극이 시작됐다.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세계관을 공유하는 방대한 22편의 영화는 수많은 히어로의 활약을 각자의 방식대로 다루지만 사실상 이들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는 인피니티 스톤이다. 지금까지는 마블이 페이즈라는 구분점을 두고 히어로 단독 주연 영화와 굵직한 사건을 한데 해결하는 4편의 <어벤져스> 시리즈 사이의 연관성과 개봉 순서 위주로 영화를 나눴다면, <어벤져스: 엔드게임>은 시리즈영화 중에서도 특히 <어벤져스> 시리즈가 다뤄왔던 문제와 방향의 마무리라는 점이 중요하다.
그 첫 시작점은 역시 <어벤져스>(2012)다. 마인드 스톤을 지닌 로키가 테서랙트, 즉 스페이스 스톤을 앞세워 뉴욕 하늘에 포털을 열었고, 히어로들은 치타우리족과 싸우느라 뉴욕을 초토화시킬 수밖에 없었다. 잃은 것도 많지만 이들은 히어로들의 단결과 보안의 필요성을 절실하게 깨닫는다. 그것은 결국 히어로들 자신에게 양날의 검으로 다가온다. 어벤져스라는 조직을 결성했으나 아이언맨의 독단적인 선택을 비롯해 여러 위기를 자초한 까닭에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2014)이라는 또 다른 비극을 만들어낸 것. 결국에는 멤버들이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2015)를 통해 분열하게 되는 최악의 상황으로까지 치달으면서 타노스라는 외부의 적이 등장한다. 마치 이 모든 빅픽처를 본인이 그리고 있었다는 듯 말이다. 조 루소 감독은 왜 타노스였나, 혹은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에서 왜 이런 파격적인 비극을 맞이하게 만들었을까, 라는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 “악당이 이기는 영화는 많지 않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악당이 이기는 경우가 많고, 우리는 늘 그 고통을 겪어야 한다. 그래서 악당인 타노스가 이기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앤서니 루소 감독은 보다 깊은 주제의식이 있었음을 시사했다. “지금 시대는 개인주의와 커뮤니티 공동체로 나뉘어 국수주의적 성향을 보이는 국가들도 존재하고 개인주의적 성향을 보이는 국가도 존재한다. <어벤져스: 엔드게임>은 공동체라는 개념 그리고 아주 개성 강한 개인주의적 성향의 캐릭터들이 모여 공공의 적을 상대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앤서니 루소 감독의 말처럼 막강한 우주의 힘을 가진 타노스에 맞서기 위해서는 어벤져스 멤버들이 힘을 한데 모아야 한다. 우주 전체의 생명체 중 절반이 사라졌으니 이들의 싸움은 쉽지 않을 것이다. 아마도 그렇기에 멤버들은 흩어졌던 히어로들을 다시 한번 규합하는 모습을 보여줄 것이다. 예고편에서 처음 모습을 보여 궁금증을 자아내는 호크아이와 양자의 영역으로 사라졌던 앤트맨이 돌아와 어떤 활약을 펼쳐줄지 기대된다. 그리고 모두가 기대하는 또 한명의 히어로 캡틴 마블의 등장은 근사한 감동을 선사할 것이다. 트린 트랜 프로듀서가 “우리는 무엇보다도 여성 주인공들을 내세우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작품 내적으로도 그리고 나 자신을 위해서도 여성 히어로의 활약은 굉장히 중요하다”라고 기자간담회에서 언급한 것도 앞서 두 감독들의 생각과 마찬가지로 타노스라는 적에 맞서야 하는 지금의 현실을 어떻게 영화에 적용시킬 것인가를 고민한 결과다. 브리 라슨도 캡틴 마블의 등장과 활약에 대해서는 “캐릭터를 연기한 후에 자세나 생각, 목소리도 더 강해졌다. 내성적이었던 내가 영화 덕분에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이것은 어찌 보면 여성이 더욱 앞으로 나와야 한다는 것을 보여줬다고 생각한다”고 취재진들에게 힘주어 말했다. 타노스의 폭주를 막기 위해 다시 한번 ‘어벤져스’들을 ‘어셈블’해야 하는 힘겨운 여정에서 이들의 활약이 기대되는 이유는, 우리가 봐왔고 기대하는 마블의 영화들이 오직 만화적인 상상력만으로 밀어붙이는 영화가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지난 10년간 <어벤져스: 엔드게임>을 위해서 달려왔다.” 마블 스튜디오의 수장 케빈 파이기는 22편의 영화를 만들었던 지난 10년의 세월을 이렇게 정리했다. 할리우드 산업이 조지 루카스, 제임스 카메론, 스티븐 스필버그로 대변되는 오리지널 블록버스터 감독 대신 슈퍼히어로 시리즈 영화 중심으로 재편되는 과정에서 VFX 기술의 발전과 4DX, 아이맥스 등 극장 환경의 변화는 슈퍼히어로 영화의 군림을 가속화했다. 아마도 이번 영화는 마블 스튜디오의 10년 역사를 정리하면서 <아바타>(2009)의 기록까지도 넘보며 새로운 역사를 쓸지도 모른다. 마블의 영화를 대하는 전세계 영화산업의 흐름이 이후에는 또 어떻게 바뀔지, 영화의 줄거리만큼이나 궁금하다. 그런데 과연 이번 영화는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기자회견 때 말했던 것처럼 “앤트맨이 타노스의 엉덩이로 들어가 수술해버리는(?) 이야기”일까. 영화를 보고 나서도 또 제작진이 어디에 무엇을 숨겨두었을지, 혹은 본 것마저 뒤집어버릴지 기대되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