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운 얘기지만 내 경우에는 외국 역사에 대한 지식 상당수가 <먼 나라 이웃 나라>에서 비롯했다. 다른 왕 이름은 기억도 못하면서 프랑스의 ‘피의 여왕’ 메리와 엘리자베스 여왕에 대해서는 잊지 않는 것이 다 어릴 때 읽은 <먼 나라 이웃 나라>의 영향인데, 여왕의 이름 앞에 ‘피의’라는 수식이 붙게 된 연유를 짙은 먹물로 표현한 페이지는 지금도 선명히 기억난다. 다소 복잡한, 글로 읽으면 암기의 영역에 들어가는 역사나 철학을 만화로 읽을 때에는 쉽게 읽히고 오래 기억된다는 장점이 있다. <철학의 이단자들>은 유럽 철학 연구 권위자(그중에서도 스피노자 전문가)인 스티븐 내들러가 글을 쓰고 그의 아들 벤 내들러가 그림을 그린 철학 만화책이다. 기독교 교리를 옹호하고 아리스토텔레스와 플라톤 이론에 무비판적으로 헌신했던 1600년대 수많은 사상가 중에서도 인간의 자유의지를 연구하고 논쟁 벌이기를 두려워하지 않았던 사상가들의 사유와 논리를 만화로 묶었다. 지동설을 증명하다 이단자로 몰렸던 갈릴레오, 오직 인간만이 영혼을 가지고 있다고 믿었던 데카르트, 그와 동시대에 살며 영향을 받았던 베이컨, 파스칼, 홉스, 암스테르담의 포르투갈계 유대인 공동체로부터 ‘끔찍한 이단 학설’이라고 파문당했던 스피노자, 아르노와 말브랑슈, 보일, 로크, 라이프니츠와 뉴턴에 이르기까지 이 책에 실린 철학자들은 모두 당시에는 ‘이단’이라 불리고 저작이 금서로 지정됐던 사람들이다. 하루 종일 철학에만 골몰했던 이론가들은 다른 철학자들의 이론에 대해서도 감시(?)를 늦추지 않았는데 특히 아르노가 라이프니츠에게 보낸 편지가 압권이다. “라이프니츠 선생, 나는 선생께 형이상학 연구를 포기하라고 권하고 싶소. 그리고 선생의 구원에 관심을 돌리는 게 어떻겠소.” 유럽을 배경으로 공부하고 상대를 비판하거나 또는 지지하고 동의하며 논리를 전개했던 당대 철학자들의 통찰을 경쾌하게 접할 수 있는 책이다.
씨네21 추천도서 <철학의 이단자들>
글
김송희(자유기고가)
사진
오계옥
2019-04-16
<철학의 이단자들> 스티븐 내들러 글 / 벤 내들러 그림 / 이혁주 옮김 / 창비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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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씨네21 추천도서 <철학의 이단자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