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에세이를 읽을 때 가장 난감한 순간은 저자의 발걸음을 따라 함께 여행을 즐기는 기분으로 글을 읽은 후 ‘나도 여기 가고 싶어’서 정보를 찾았을 때 책에 감상만 있고 공간에 대한 정보가 없을 때다. 아니, 좋은 건 충분히 알겠는데요, 그러니까 거기 어떻게 찾아가야 하냐고요! 게다가 해당 장소에 대한 외향 묘사나 저자의 감상만 있고 그 공간에 대한 정보는 일절 없어서 다 읽었을 때 ‘저자의 좋았던 감정’ 말고는 얻는 게 없었던 책은 또 얼마나 많은지. <씨네21> 이다혜 기자의 <교토의 밤 산책자-나만 알고 싶은 이 비밀한 장소들>이 기존 여행 에세이와 다르다는 걸 설명하느라 말이 길어졌다. 그가 짧은 휴일에 다녀온 여행지에 대해 신이 나서 설명할 때 얼마나 믿음직한 영업왕이 되는지를 아는 사람으로서 이 책을 소개할 수 있어 기쁘다. 자신이 좋아하는 장소, 발견한 음악이나 책, 빛나는 무언가를 소개할 때 ‘다혜리’는 대단한 영업왕이다. 그가 옥장판이나 마늘즙 같은 걸 팔았으면 나는 아마 이미 몇개는 샀을 거다. <교토의 밤 산책자…>가 교토의 공간을 영업하는 방식은 이러하다. 에이칸도를 소개할 때 그곳의 단풍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묘사하고, 가장 훌륭한 절경을 볼 수 있는 정확한 장소를 알려준다. 그리고 이 공간을 소개한 또 다른 책을 소개하며 그 책에서는 이 공간이 어떻게 다뤄지는지도 곁들인다. 어느 계절, 어느 시간에 가야 최상의 상태를 즐길 수 있는지, 언제 가야 사람이 덜 붐비고 비교적 편안한 교통편으로 가닿을 수 있는지 정보도 전한 후에 일본에 사는 친구와의 우스운 일화도 더한다. 힘을 뺀 문장으로 있는 그대로의 교토를 전하려 한 저자의 발걸음을 따라가면 교토의 꽃내음이 코끝에 와닿는다. 그야말로 기자이자 작가이자 북칼럼니스트이자 에세이스트이자 여행자이자 영업왕인 이다혜만이 쓸 수 있는 여행책이다.
교토에서
소중한 것을 잃어간다. 지금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 전부였던 시절을, 믿고 사랑했던 것들을 잊어버리고 앞으로 나아간다. 그래야 앞으로 나갈 수 있으니까. 그런데 가끔은, 거기 있던 것들이 한꺼번에 찾아오는 때가 있다. 그런 장소가 있다. 시센도에 걸려 있는 찰스 황태자와 다이애나 황태자비의 사진처럼 더이상 그렇지 않은, 슬픔으로 끝난 관계들이 가장 반짝거렸을 때를 상기시키는 장소가 있다. 그 사람과 같이 방문하지 않았음에도 그런 것들을 깨닫게 하는 장소가 있다.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그런 장소 찾기의 중독자들이다. 나에게는 시센도가 그런 곳이다. 처음 방문했던 때는 혼자가 아니었는데도 그랬다. 분명 당신에게도 그런 장소가 있을 것이다. 그러니 아직 찾지 못했다면 찾기를 포기하지 마시길.(14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