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잔나비의 노래를 들은 것은 서울패션위크에서 열린 남성복 브랜드 ‘비욘드클로젯’ 컬렉션 무대에서였다. 계절이 몇번 바뀔 만큼 시간이 흘렀다. 애플뮤직에 들어갔다가 어떤 소년(혹은 청년)의 자화상을 보았다. 잔나비 정규 2집 앨범 표지였다. 앨범 제목은 《전설》이다. 잔나비라는 밴드의 정보를 알기 전, 처음 노래를 들었을 때는 이 밴드가 내가 놓친 과거의 숨은 음악가인 줄 알았다. ‘그룹사운드’라는 단어가 어울리는, 어느 정도 예스러운 멜로디가 깔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밴드 구성원은 전부 1992년생이고, 데뷔한 해는 2014년이라고 했다. 최근 음반으로 갈수록 자기 색이 짙어지는 점도 마음에 들었다. 이번 앨범의 타이틀곡은 <주저하는 연인들을 위해>이다. 노래를 듣고 마음에 들었다면 뮤직비디오를 꼭 보길 권한다. (아마도) 1980년대 정도를 배경으로 한 것 같은데, 여성 집배원과 남성 작가가 주인공으로 나온다. 시대가 시대이고 주제가 주제인지라 옛날 서적이 몇권 중요하게 등장하며 잔나비의 ‘그룹사운드’ 연주와 어울린다. 얼마 전 나는 오래된 국내외 출판물을 다루는 ‘산책 Bookwalk’라는 서점을 열었기 때문에 소품으로 쓰인 책이 반가웠다. 사실 음악만큼 ‘유행’에 민감한 대중문화 장르도 없다. 어제 본 미국 힙합 음악가의 스타일이 며칠 후면 한국 래퍼의 노래가 되는 세상이니까. 잔나비는 ‘쿨’하고 ‘힙’한 게 싫다고 했다. 글쎄, 받아들이기 나름이지만 그들이 지금 기조를 유지했으면 한다. 과거도 현재도 아닌 기분으로, 이들의 음악을 듣게 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