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주 가던 식당이 있었다. 그곳의 음식 맛은 집밥처럼 담백했지만 메뉴는 개성이 분명했다. 손님은 많지도 적지도 않았다. 조용하고 편안한 느낌에 즐겨 찾던 곳이었다.
여느 때처럼 그곳을 방문했는데 입구에 “10일까지 영업합니다. 그동안 애용해주셔서 감사했습니다”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바로 그날이 10일이었다. 하필이면 식당의 마지막 영업날 그곳을 찾았던 것이다. 마지막 날이라 생각하니 마음이 애틋해졌다. 식당 내부를 구석구석 살펴보니 그날 따라 더 고색이 짙어 보였다. 그곳에서 먹는 마지막 음식이라 생각하고 가장 좋아하는 메뉴를 시켰다. 매니저는 마지막 날이라 재료가 떨어져서 평소보다 양이 적게 나올 것이라고 했다.
과연 평소보다 양이 너무나 적었다. 마지막 남은 한줌의 재료로 만든 음식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더 애잔해졌다. 손님이 없던 탓에 ‘그렇다면 내가 마지막 손님이라도 되어야겠다’ 생각하고 문 닫을 때까지 버티리라 결심했다. 실망스럽게도(?) 그 생각을 하자마자 문이 열리고 손님들이 들어왔다. 알고 보니 식당이 완전히 문을 닫는 것은 아니었다. 건물주가 바뀌어 건물 전체를 리모델링하는데, 다시 재계약을 할 수도 있고 다른 곳으로 이사 갈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나는 제발 재계약을 하세요, 라는 표정을 지었으나 매니저는 쿨하게 명함을 건네며 “혹시 저희가 다른 곳으로 이사 가면 전화주세요”라고 말했다. 왠지 나만 서운하고 절박한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 속으로 말했다. ‘저 사실 단골이에요. 제가 섭섭한 걸 안 알아주시니 섭섭하네요.’ 문을 나서며 속으로 되뇌었다. ‘단골이라. 정말 내가 단골이었던가?’
사전적으로 보자면 단골은 오랫동안 이어지는 거래 관계를 뜻한다. 하지만 내게 단골은 그 이상의 뜻이다. 자주 찾다 보니 거래 이상의 인격적 관계를 맺는 사이, 뜸하면 궁금해지고 오랜만에 찾으면 반갑고, 그동안 어찌 지냈냐고 묻는 사이가 단골이다. 그렇다면 나는 단골집을 가진 지 참으로 오래됐다.
대학 시절, 동네 한 건물의 1층엔 호프집이 있었고 2층엔 당구장이 있었다. 나와 친구들은 두집 모두 단골이었다. 당구장 사장님과는 치킨을 걸고 내기 당구를 쳤다. 호프집 사장님과는 함께 맥주를 마시다 2차로 당구장에 갔다. 내 이름은 물론 내 동생들의 이름도 알고 안부를 묻는 곳이었다. 두집은 비슷한 시기에 문을 닫았다.
단언컨대 그 이후 내게 단골집은 없었다. 임차료와 수익의 계산법에 따라 개업과 폐업이 무수히 반복되는 시대에 접어든 탓이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언제나 이동했고 멈춰 있어도 이동할 준비를 하기 위해 멈춘 것이었다. 어디를 가건 금방 사라질 것 같은 느낌, 심지어 몇년을 가도 다음주면 사라질 것 같은 느낌이 “모바일 시대”에는 정상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사라진다는 것은 어찌 됐건 슬픈 일이고 사라질 것을 예감하면서 애착한다는 것은 더 슬픈 일이다. 그러니 내가 느낀 감정의 실체는 식당이 사라진다는 사실 자체가 아니라 사라질 거라는 예감이 맞았다는, 결국 올 것이 오고야 말았다는 인식에서 비롯된 것이리라.
모든 것은 사라지게 돼 있다. 하지만 나는 그 사실에 결코 익숙해지지 않을 것이다. 하긴 그 누가 그럴 수 있으랴. 그저 그런 척 하고 살아갈 뿐. 이 시대에 단골은 시대착오적으로 서글픈 존재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