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변에 있는 어느 호텔. 시인 영환(기주봉)은 왠지 자신이 곧 죽을 것 같은 생각에 미리 영정 사진도 찍고, 아들 경수(권해효)와 병수(유준상)를 호텔로 부른다. 하지만 부자는 같은 공간에 있으면서도 쉽게 만나지 못한다. 동거하던 남자에게 배신당한 상희(김민희)는 친한 선배 연주(송선미)를 부른다. 헤어진 남자에 관한 대화를 나누다, 잠깐 침대 위에서 잠이 든 사이 밖에는 눈이 수북하게 쌓였다. 호텔 앞에서 잠시 밖으로 나온 상희와 연주를 마주친 영환은 그들의 아름다움에 감탄한다.
데뷔작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1996) 이후 죽음을 가장 노골적으로 다룬 홍상수 감독의 영화다. 경수와 병수, 상희와 연주가 서 있는 좌표는 이 테마에 진입하는 데 중요한 기준점이다. 상희와 연주가 호텔 커피가 너무 맛이 없다며 밖에서 테이크아웃해온 커피를 마시고 바깥 풍경에 감탄하는 사이, 경수와 병수는 별생각 없이 호텔 안 커피숍에서 시간을 보내며 눈에도 관심을 갖지 않는다. 영환은 두 여성과 우연히 마주치고 그들과 예술에 대한 대화를 나누지만 그의 두 아들은 인근에 있어도 알아보지 못하고 소통은 유리창에 의해 차단된다. 연주가 병수에 대해 “진짜 작가도 아니고 대중적이지도 않고 그냥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이라고 코멘트한 것과, 전작보다 구조적으로는 단순한 길을 택한 <강변호텔>의 스타일을 비교해보는 것도 영화를 감상하는 흥미로운 방식이 될 듯하다. <그 후> <풀잎들>에 이어 홍상수 감독의 이번 신작 역시 흑백으로 촬영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