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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일> 전도연 - 함께해서 감당할 수 있었다
이주현 사진 백종헌 2019-03-26

전도연이 나오는 영화라면 믿고 볼 수 있지, 그래도 헛돈을 쓰진 않았지, 그런 믿음을 주는 배우이고 싶고 사람이고 싶다.” 이런 의지 때문일까. 스스로 납득할 수 있는 선택을 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개봉 영화만 치면 2016년 개봉한 <남과 여> 이후 3년 넘게 영화에서 전도연을 볼 수 없었다. “누가 물어보더라. 혹시 일 그만두셨느냐고. (웃음) 마음은 빨리 다음 작품을 하고 싶은데 선택할 때는 생각처럼 잘되지 않는다. ‘이만하면 됐지’ 하고 타협하기 싫었던 것 같다.” <생일> 역시 “생각에 생각에 생각을 거듭”해 출연을 결정한 작품이다. 세월호 참사 이후 남겨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 <생일>에서 전도연은 아들을 먼저 떠나보낸 엄마 순남을 연기한다. 순남이 짊어진 감당하기 힘든 슬픔은 전도연을 통해 스크린에 고스란히 맺힌다.

-<생일> 출연 제의를 받고 처음엔 거절한 것으로 안다.

=다가가기 힘든 큰 슬픔 때문에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이게 거절할 이유가 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세월호 이야기에 다른 식으로 접근한 시나리오였다면 출연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생일>의 시나리오는 읽고 나서 누군가 등을 토닥여주는 느낌이 들었고 따뜻했다. 앞으로 살아가야 할 사람들을 다독여주는 이야기고 그 마음을 나누려는 영화라고 생각하니 처음의 부담감을 넘어설 수 있었다.

-우리나라에선 배우들이 정치적·사회적 소신을 피력하면 그 발언에 지나치게 이목이 쏠려 배우들이 이와 관련한 발언을 조심하게 되는 것 같다.

=영화에 정치적 색깔을 입히거나 정치적 잣대로 사람을 규정하는 게 솔직히 이해되지 않는다. <생일>을 선택할 때도 그런 우려를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물론 나의 성향이 있지만 그걸 영화를 통해 나타내려고 한 건 아니다. 그저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지만 계속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공감했다.

-순남은 영화적으로 창조된 캐릭터지만 세월호 참사로 아이를 잃은 아픔을 겪은 유가족이다.

=실존 인물은 아니지만 세월호 유가족 중 누군가일 수 있고 혹은 그들 자체일 수 있어 조심스러웠다. 연기하면서는 내 감정에 빠지지 않으려 했다. 순남이란 인물을 객관적으로 지켜보려 했다. 그러지 않으면 내가 느끼는 게 순남의 감정인지 내가 연기하면서 느끼는 감정인지 모를 수 있겠더라. 이 큰 슬픔의 소용돌이에 휩쓸리지 말아야겠다, 중심을 잡고 가야겠다, 그런 생각을 했다.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캐릭터란 점에서 <밀양>(2007)의 신애가 생각난다.

=아이를 잃은 엄마라는 상황이 닮지 않았나 하는 우려는 했다. 물론 신애처럼 연기하진 않겠지만, 나도 사람이기 때문에 표현할 수 있는 슬픔이란 게 한정적일 수 있지 않나. 나는 다르게 느끼고 다르게 연기하지만 보는 입장에선 같아 보일 수 있고.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밀양>의 신애를 연기할 때는 그 감정을 알고 싶어서 미친 듯이 달려들었던 것 같다. 계속 달려들어도, 느껴도, 그게 아닌 것 같았다. 지금은 한 아이의 엄마로, 아이를 잃은 엄마의 마음이 어떨지 현실적으로 생각하게 되니까 오히려 한 발짝 빼게 된다.

-순남은 자주 어딘가에 기대 있거나 누워 있다. 슬픔 속에 살아가는 인물의 감정을 어떻게 몸으로 표현하려 했나.

=아이를 떠나보내지 못한 엄마이기 때문에 최대한 슬픔을 머금고 있으려고 했다. 만약 순남의 슬픔이 크게 터져 나온다면 그건 수호(윤찬영)를 보내야 할 때라고 생각했다.

-수호의 생일 모임을 하기 전 결국 수호의 방에서 오열한다. 영화에 처음으로 등장하는 순남의 통곡 장면이다.

=시나리오에는 ‘아파트가 떠나갈 듯이 오열한다’고 쓰여 있었다. 대체 어떻게 울어야 아파트가 떠나가는지. (웃음) 혹시나 그 순간의 순남을 느끼지 못할까 봐 겁이 났고 부담을 많이 느낀 장면이다.

-수호의 생일 장면을 찍을 때도 현장이 눈물바다였을 것 같은데.

=수호의 어린 시절부터 생전 마지막 모습까지 사진을 함께 보는데, 이 아이를 어떤 마음으로 키웠을지 너무나 생생하게 느껴졌다. (차오른 눈물이 결국 떨어진다.) 저렇게 소중히 키운 아이를 어떻게 떠나보낼까…. 이틀 동안 힘들게 찍었다. 함께해서 감당할 수 있었던 것 같다. 함께 연기한 설경구 배우는 물론이고, 카메라의 포커스 메인에 잡히지 않는 배우들까지 진심으로 함께 감정을 나눴다.

-<생일>을 찍고 나서 감정의 후유증이 오래가진 않았나.

=원래 후유증이 오래가는 스타일이 아닌데 <생일>을 찍고 나선 끙끙 앓았다. 촬영 끝나고 오랜만에 운동하러 갔더니 선생님이 근육이 다 뒤틀려 있다고 하더라. 그러면서 하는 말이 혹시 애 낳는 연기하셨느냐고. (웃음) 애 낳는 것보다 더 힘든 연기를 한 것 같다.

-<생일>이 많은 관객을 만났으면 하는 바람이 클 것 같다.

=메시지를 주는 영화가 아니라 도리어 메시지를 받고 응원받아야 하는 영화라고 생각한다. 관객이 봐주고 기억하고 슬픔을 나누면 그게 큰 위안이고 위로가 되지 않을까. 같이 나누는 영화였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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