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J ENM의 사외이사로서 5년여 기간 동안 32회 회의에 출석하여 경영진안에 대한 찬성표만 던지며 공식적으로만 2억원 넘게 수령했다는 사실, 공직에서 물러난 이후 잔존 인맥을 이용해 영상산업협회 등의 회장을 지낸 전형적인 관료 출신 로비스트라는 이유만으로 충분하다고 본다. 특히 CJ그룹은 영화계의 시장지배력을 바탕으로 수많은 중소 배급사를 경쟁에서 도태시켜 한국영화의 다양성을 죽여왔다. 아무리 개인에 대한 판단은 별도의 분석을 요구하더라도 그런 CJ와 이렇게 지속적인 관계를 맺어온 사람이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되었을 때 CJ 중심의 강고한 기득권 구조에 변화를 줄 수 있는 법안이 통과되는 것은 무망한 노릇이다.
‘한국영화동반성장이행협약 모니터링보고서’의 문제
뿐만 아니라 박양우 내정자는 같은 시기 한국영화산업전략센터(이하 전략센터)의 공동대표를 지냈는데 전략센터는 지속적으로 소위 ‘동반성장’이라는 모토 아래 CJ의 시장지배력 남용행위를 용인하는 듯한 행보를 보여왔다. 예를 들어 전략센터의 센터장이 주축이 되어 작성한 한국영화동반성장이행협약 모니터링보고서(2013, 2014, 2015년도 작성, 이하 모니터링보고서)는 외부인이 보기에는 ‘한국영화시장에는 독과점이 없구나’라고 느끼도록 디자인되어 있다. 모니터링보고서는 배급시장에 대해서는 독과점지수를 산정하지만 상영시장에 대해서는 독과점지수를 산정하지 않는다. 상영시장에 대한 분석에서는 아예 독과점이라는 말 자체가 나오지 않는다. 상영시장의 독과점이 더 심한데 왜 그럴까? 또 ‘영화별 시장점유율’은 업체들의 독과점행위 여부를 판단함에 있어 전혀 쓸모없는 통계인데 이를 구해서는 “월별 관객수 점유율은 독과점기준을 초과하지만 월별 상영횟수 점유율은 독과점기준에 미달한다”라고 결론을 맺는다. “영화들에 고르게 상영횟수가 분배되지만 관객의 선호가 몰리는 것뿐이다”라는 명제로 이어지기 매우 편리한 구조인 것이다.
특히 2014년 모니터링보고서에는 난데없이 각주에 ‘독점’ 판단기준이 HHI 4,000이라는 주장이 등장한다(독과점지수, 즉 HHI에 대한 설명은 2017년 5월 8일 포커스 지면 “영비법 개정안 ‘안도법안’에 반대하는 한국영화산업전략센터의 이해하기 힘든 행보” 참조). 전략센터는 이는 오타이며 이것과 무관하게 본문에서는 HHI 1,800을 기준으로 ‘독과점’ 여부를 판단했으니 잘못이 아니라고 주장하지만 각주를 본 사람은 ‘한국 상황은 과점이지 더 심한 독점은 아니구나’라고 느낄 수 있다. 이를 필자가 2015년 6월 공개석상에서 지적하자 모니터링센터측에서는 “초안에 있는 오타였고 최종본에는 고쳤다”고 변명하여 필자로부터 “초안을 보고 판단했다면 미안하다”라는 말을 유도해냈다. 하지만 나중에 확인해보니 최종본도 동일하게 잘못되어 있었다. 사실 이런 언변 때문에 필자는 더욱더 단순 오타가 아니라고 믿게 되었다.
이와 같은 의도는 여기저기에서 드러난다. 배급시장에 대해서는 외국영화 직배사를 포함해서 독과점지수를 구하여 당연하게도 1,800에 이르지 않으니 독과점이 아니라고 지적한 후 다시 ‘한국영화’ 배급시장에 대해서 2014년 독과점지수(1,978)를 구했을 때엔 갑자기 기준을 2,000으로 올려놓고 이 기준에 미달된다고 결론낸다. 일관되게 1,800을 기준으로 판단했다면 2014년도 그전과 같이 독과점이었다고 판단했겠지만 기준을 자의적으로 바꿔서 2014년부터는 독과점지수가 기준 이하로 낮아졌다는 오해를 불러일으킨다. 결론적으로 단어검색을 해보면 그 보고서 내에서는 ‘독과점’이라는 단어 뒤에는 거의 항상 ‘미달’이라는 단어가 나온다.
이 모니터링보고서는 그냥 ‘n분의 1’의 보고서가 아니다. 2011년 영화계 불공정거래관행 근절을 목표로 대기업, 중소기업, 노동자, 관이 모여 만들었던 한국영화 동반성장협의회(이하 동반협)의 협약이 이행되고 있는가를 영화계를 대표하여 검증하기로 한 뒤 만든 보고서다. 이 모니터링보고서의 내용에 따라 추후 영화계의 노력의 향방이 결정되어야 하는 중요한 보고서였던 것이다. 이 모니터링보고서는 내용도 문제지만 1억원 넘는 돈을 받고도 보고서의 근거가 되는 로데이터를 발주자인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에 제출하지 않았다. 결국 영진위는 ‘블랙리스트’의 서슬이 시퍼렇던 2015년 당시 문체부의 이해할 수 없는 압력에도 불구하고 2016년 보고서사업을 환수하여 자체 작성에 나선다. 2016년 영진위의 모니터링보고서에서야 상영시장이 ‘HHI에 따를 경우에도 3,600을 넘어서고 있기에… 소수 기업에 매우 집중되어 있는 시장’이라는 이미 모두가 알고 있는 비밀(?)이 빛을 보게 되었다.
위 문제보고서들은 한국영화산업불공정행위모니터링신고센터(“신고센터”)명의로 발표되었으나 박양우가 대표였던 전략센터의 활동이다. 전략센터가 2013년 11월 창립식에서 배포한 자료에도 “동반성장협약 이행 관련 모니터링/신고센터 운영”이 활동내역에 적시되어 있다. 신고센터는 향후 영진위로부터 모니터링 사업에 대해 1억4천4백만원을 받기위해 급조된 사업조직이었던 것인다.
전략센터의 독과점 관련 ‘편들기’
전략센터의 자체 활동도 심각하다. 예를 들어, 2017년 2월 4일 한국지방자치학회 동계세미나에서 전략센터 소장이 ‘한국영화’ 시장을 별도로 획정하여 독과점 여부를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을 했다. 이는 매우 중요한 쟁점인데 한국영화시장 독과점론의 핵심은 “대기업들이 막강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창작력을 별로 필요치 않는 상영시장을 장악한 후 (2017년 스크린 수 기준 92%, 매출 기준 97%) 실제 영화산업의 꽃이라 할 수 있는 영화배급업에 시장지배력을 이전시켜 중소 배급사들을 도태시켰고 이들에 의지하던 중소 제작사들도 역시 피폐화시켜 결국 한국영화의 다양성을 ‘모(천만 영화) 아니면 도(저예산영화)’의 상황으로 내몰았다”는 서사인데 과연 시장지배력의 이전이 얼마나 심한가를 측정하는 데에 중요한 판단요소가 되기 때문이다. 영진위는 이미 2006년과 2012년에 제작과정이 상이하기 때문에 ‘한국영화’를 별도로 획정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영화산업 독과점 현황과 공정경쟁질서 확보방안”, 2006~05, “영화산업 내 대기업의 배급과 상영 분리 검토”, 2012). 영화산업 공정성의 핵심이 ‘한국영화’ 제작의 다양성임을 고려할 때 ‘전체 영화로 시장을 넓혀보면 독과점 아니다’라고 말하려면 더욱 신중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더욱 심한 것은 전략센터의 추후 행보이다. 2016년 10월 영화계의 3가지 숙원, 즉 스크린 쏠림현상 완화, 대기업 상영관에 의한 한국영화 배급시장 점령, 독립영화 상영장소 확보에 대한 답을 모두 담고 있는 안철수·도종환 법안(이하 안도법안)이 발의되자 전략센터는 이 법안이 ‘근거’가 없다며 비난한다 (2017년 5월 <씨네21> ‘포커스’ 지면, “남 탓 하지 마시라”(최현용), 2017년 4월 <씨네21> ‘한국영화 블랙박스’ 지면, “대기업 불공정거래 관행 시정명령조치 취소 판결에 반론이 필요한 이유”(최현용)). 영화계 최대의 광고주 CJ의 영향력을 무릅쓰고 확보한 언론사 지면을 전략센터는 자신이 밀고 있다는 동반협을 논하기보다는 다른 영화단체들이 뜻을 모아 발의한 반독과점법안을 비판하는 데 할애해온 것이다. 여기서 누구의 판단이 옳고 그름을 따지려는 것은 아니다. 이런 입장의 단체를 이끌어온 박양우 문체부 장관하에서는 안도법안이 절대로 통과될 수 없다는 것이다. 전략센터는 2015년 공정거래위원회의 CJ, 롯데에 대한 불공정거래행위 시정조치가 2017년 사법부에 의해 취소된 사실을 들어 안도법안이 어차피 무망하다고 한다. 당시 시정조치는 ‘자기 영화 밀어주기’에 대한 것이었는데 안도법안은 대기업 상영관들이 단순히 자기 영화에 5% 정도의 스크린을 더 몰아줬다는 서사에만 의존하지 않는다. 그런 차별적 행위 없이도 CJ, 롯데 등은 상영배급의 동시과점을 통해 배급부문 전체를 약탈하고 자신들이 97%를 점유한 상영관을 배불리는 ‘업계표준’ 전략으로 비계열사 배급사들의 이윤을 압착하고 이들을 도태시켜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