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을) 신뢰하는 친한 동생으로부터 선물을 받았다. 며칠 지났을까. 나는 각 잡고 감상을 시작했다. 오호라. 강렬한 퍼즈 톤 기타가 내 귀를 압도하더니 보컬은 들릴 듯 말 듯한 볼륨으로 그 사이를 부드럽게 흐른다. 세상은 이런 유의 음악을 보통 슈게이징(shoegazing)이라 칭한다. ‘고개를 숙이고 구두를 보면서 연주한다’라는 의미다. 메인스트림은 아니지만 1990년대 이후 꽤 단단한 팬 베이스를 보유하고 있는 장르라고 보면 거의 정확하다. 직업이 직업인지라 지금껏 꽤 많은 수의 슈게이징 밴드 음악을 접했다. 걸작도 있었고, 망작도 있었다. 이를 가르는 기준은 적어도 나에겐 하나뿐이다. 마치 분쇄기 소리처럼 들리는 기타 연주를 바탕으로 전개되는 주요 멜로디가, 비록 뒤에 묻혀 있다 하더라도 기억에 남아야 한다는 거다. 이런 측면에서 바로 이 앨범, 나싱(Nothing)의 통산 3집 《Dance on the Blacktop》(2018)은 최소 별 4개는 받을 자격이 있다. 각각 첫 싱글과 두 번째 싱글로 발매된 <Zero Day>와 <Blue Line Baby>만 골라서 들어봐도 좋다. 결국 당신의 뇌리에 각인되는 건 곡이 품고 있는 선율일 테니까. 물론 슈게이징은 멜로디 중심의 장르가 아니다. 그보다는 거대한 사운드의 벽이 듣는 이의 몸에 흡수되는 쾌락을 즐기는 쪽에 가깝다. 그럼에도, 멜로디는 허술한데 소리의 크기로만 우기듯 밀어붙이는 밴드를 여럿 경험했다. 나싱은 그런 식으로 음악을 하지 않아서 좋다. 그래서 자신 있게 강추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