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것도 글이 될 수 있을까’ 에세이를 써보려 하는 사람들이 자주 하는 고민이다. 이를테면 마트 앞에서 호떡을 파는 아저씨에게 “붕어빵은 안 파세요?”라고 물었을 때 아저씨는 “에휴, 반죽하면 어깨 나가요”라고 답하고는 “요즘은 붕어빵도 다 프랜차이즈라 떼어주고 나면 남는 게 없다”고 답한다. 누구나의 하루에 일어날 수 있는 사소한 대화이지만 저자 은유는 타인의 노동을 상상하고, 글로 옮긴다. 그러니까 일상의 관찰자가 되어 거기에 상상력을 더하면 무엇이든 글이 될 수 있다. 주의 깊게 듣고, 사소하게 묻고, 집중해서 듣고, 상대를 상상하지 않으면 우리는 ‘당사자’가 되어볼 수 없다. 그리고 당사자가 되어보지 않고서는 섣불리 남에 대해 판단하고 평가하고 말을 덧붙여서는 안 된다. 그런 사려 깊은 고민과 상상력들이 <다가오는 말들>에는 담겨 있다. 딸이자, 엄마이자, 여성으로서 겪었던 일들을 강연에서 말하다 한 남성에게 “너무 남자를 미워하지 마세요”라는 비난을 들었을 때조차 은유는 고민한다. “내가 오늘 남성을 혐오하는 발언을 조금이라도 했나.” 그저 여성의 삶에 대해 말했을 뿐인데도 상대 남성은 모든 남성을 싸잡아 비난하는 것처럼 받아 들였고 손을 들어 자신의 의사를 표현한 것이다.
김현의 <걱정 말고 다녀와>를 읽은 은유는 ‘남의 입장이 되어봄’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본다고 쓴다. 김현의 책은 켄 로치 감독의 영화들에 대해 쓴 책이다. 혐오와 차별의 감정이 들 때마다 남의 입장이 되어보지 않아서라고 말하는 켄 로치의 영화를 본 김현의 글을 읽은 은유는 또 다른 되어보기에 대해 쓴다. 은유의 글을 읽은 내가 지금 또 이런 글을 쓰는 것처럼. 공감이란 이렇게 무엇이든 쓰고 싶게 만든다. 켄 로치가 김현에게, 김현이 은유에게, 은유가 나에게로… 되어보기의 파장은 이렇게 점차 넓어지고, 우리는 서로의 세계를 흡수하며 앞으로 나아간다.
되어보기의 망토
우리가 배워야 하는 건 어머니의 은혜가 아니라 어머니의 고통이어야 했다. '평생 밥 당번'으로 사느라 뼈가 녹는 고충을 당사자들은 제대로 말하지 않았고, 구구절절 말하지 않는 고통을 남들이 먼저 알아주는 법은 없다. 하지만 그 고통을 알아보는 능력이 부족하면 나쁜 어른으로 오래 늙는다. 살면서 제대로 배운 적 없지만 살면서 너무도 필요한 일이 ‘그 사람의 입장이 되어보기’라는 걸 절감하던 나날에, 참고서 같은 책이 내게로 왔다.(10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