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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류준열 - 고전은 훌륭한 교과서
이화정 사진 최성열 2019-03-19

슈트 차림에 출입용 명찰까지. 여의도 증권가의 아침 풍경, 어디서 많이 본 평범한 샐러리맨. 막 동명증권에 입사한 신입 주식브로커 조일현의 모습이다. 백도, 줄도, 실적도 없던 일현이 작전 설계자 번호표(유지태)를 만나면서 ‘돈맛’을 알아버렸다. 억 단위 돈을 좌지우지하는 클릭 사기. 돈을 벌고 싶었고, 돈에 빠지고, 그래서 돈의 무서움을 알기까지. 류준열은 시시각각 변모하는 일현을 연기한다. 지금까지 류준열의 작품에서 보았던 익숙한 모습들이 그 변화에 조금씩 녹아들어간다. 익숙하면서도 한층 믿음직스러운 모습으로, 류준열은 <>의 스토리를 무리 없이 끌어나간다.

-<>의 어떤 매력이 가장 크게 다가왔나.

=일현은 동시대 인물이자, 나와 같은 나이대다. 나에게도 일현 같은 사회초년생 시절이 있었다. 직업을 선택하고 취직을 해야 하고 또 돈에 대해 고민한다는 점에서 비슷한 지점들에 공감이 많이 됐다.

-평범한 인물의 일탈 과정을 따라간다는 점에서 앞서 <독전>(2018), <뺑반>(2018) 등에서 보여준 액션, 누아르 속 장르적 캐릭터와 톤이 확연히 다르다.

=<독전>은 공감이라기보다 상상 속 인물로 표현했다면 일현은 리얼함이 바탕이었다. 배우들에게 모두 그런 욕심이 있을 것 같다. <독전>의 ‘락’처럼 지극히 영화적인 인물을 연기하는 한편으로 정말 있을 법한 인물을 연기하는 것. 이런 배역들을 오가면서 느끼는 배우로서의 카타르시스가 있다.

-류준열이 가진, 자연스러운 청년의 모습을 가장 잘 반영한 캐릭터기도 하다.

=사회 초년생인 척하는 게 아니라, 진짜 초년생으로 보이면 좋겠다 생각했다. 진짜 멋있거나, 개성이 강한 배우들은 아무리 감추려 해도 어쩔 수 없이 멋이 드러나지 않나. (웃음) 나는 그렇지는 않아서…. 일현뿐만 아니라 내가 연기하는 캐릭터는 나에게서 출발한다. 이번엔 예전에 찍어둔 증명사진이나, 데뷔 직전까지 취업 준비할 때 찍어둔 사진들을 많이 봤다. 그때 느낌을 최대한 불러오려고 했다. 지금까지의 역할 중 가장 전문직이라 촬영 들어가기 전에 조사도 많이 했다. 실제 증권사도 견학하고, 관련 업무를 하는 분들도 만나 이야기도 많이 나누었다.

-일현은 번호표라는 미스터리한 인물을 따라가는 사이, 돈의 맛을 보고 범죄에 가담하고, 각성의 단계로 나아간다. 번호표는 일현에게 일종의 멘토인데, 유지태 배우와 호흡을 맞췄다.

=번호표와 일현의 관계는 수직적이고 상하적이다. 연기하면서도 유지태 선배가 가지고 있는 아우라에 더 취하려고 했다. 이미 내가 선배님을 존경하는데, 그걸 더 과장되게 느끼려다 보니 나중에는 그 존재가 너무 세고 두렵게 다가오더라. 번호표는 돈에 대한 욕심보다 승리와 성취에 대한 욕망이 더 강한 사람이다. 일현도 어쩌면 번호표 같은 사람이 될 수 있지 않았을까. 영화의 결말이 마냥 속시원하지 않았던 것도, 일막 일장이 끝나고 새로 시작될 것 같은 느낌도 그래서였다.

-일현은 주가 조작으로 흥망성쇠의 기로에 놓인 <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2014)의 조던 벨포트와도 일정 부분 닮아 있는 인물이다. 한 인물의 변화를 그린다고 했을 때, 참고한 작품이나 모델이 있나.

=일대기 영화를 워낙 좋아한다. 이 작품이 일현이 성장해가는 과정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그런 유의 작품들을 다시 많이 찾아봤다. 특히 마틴 스코시즈 감독의 작품은 일대기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많이 염두에 뒀다. <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보다는 오히려 <갱스 오브 뉴욕>(2003), <에비에이터>(2004) 같은 작품을 많이 생각했다. 평소에 고전영화를 많이 본다. 트렌드가 달라지고 연기 톤도 달라졌지만, 고전을 보면서 공부를 많이 한다. 훌륭한 교과서라고 생각한다.

-영화를 많이 보는 걸로 유명해 시네필로도 알려져 있다.

=시네필이라고? 멋있는데. (웃음) 이번 작품을 하면서 사나이픽처스의 한재덕 대표님도 고전영화 마니아라 서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에게 <>이라는 영화는 영화하는 재미를 새삼 깊이 알려준 작품이다. 동료를 만나는 것, 촬영장에서의 생활 등 배우로 살아가는 시간 속에서 어떻게 재밌게 살지 많이 생각했다. 촬영 끝나고 다 같이 막걸리 한잔할까, 이런 기분도 이번 작품을 하면서 느끼게 됐다.

-올해도 <뺑반>에 이어 <> 그리고 <전투>까지 작품이 이어진다. ‘소처럼 일 한다는 뜻의 소준열’이라는 수식어가 딱 어울린다.

=체감은 오히려 덜하다. 작품에만 묻혀 있다 돌아보면 지난 몇년간 시간이 빨리 갔음을 느낀다. 한 작품에 온전히 집중하는 스케줄이다 보니, 모든 과정이 낯설던 데뷔 초보다는 오히려 여유도 생겼다. 그런데 “많은 작품에 부담을 느끼지 않느냐?”는 질문을 자주 받으면서 여러 생각을 하게 된다. <뺑반>의 한준희 감독님도 그렇고, 차기작인 <전투>의 원신연 감독님도 시간을 내 같이 참여해준 데 대해 내게 고마움을 표해주셨는데, 나로서는 많은 이들이 함께하는 작품을 맡겨줘 고마울 뿐이다. 배우로서는 늘 새로운 캐릭터에 욕심이 난다. 고민하고 찾아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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