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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독립영화의 상징 에버스 찬
2002-04-30

주목받는 홍콩의 독립영화 감독인 에반스 찬(천야오청·42)은 전주국제영화제의 경쟁부문인 `아시아 독립영화 포럼'에 <섹스와 사랑의 지도>(2001)란 작품을 들고 왔다. 세 주인공이 각자의 삶에 `비밀'로 남아 있는 상처를 치유해가는 과정을 그린 작품이다. 고등학교 때 동성애 충동을 억제하라는 상담교사의 끔찍한 처방을 잊지 못하는 댄서 래리, 극심한 소통의 갈망 때문에 벨그라드라는 낯선 도시에서 광기를 폭발시킨 `나쁜 기억'을 가진 미미, 그리고 자신의 아버지가 `세탁'을 위해 마카오로 흘러들어온 나치의 황금을 이용해 치부한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을 떨치지 못하는 다큐멘터리 감독 웨이밍. 세 사람은 서로의 가시 박힌 내면을 털어놓으며 기묘한 삼각관계를 형성한다. 매우 사적인 이야기이지만, 영화 구석구석엔 `반환'이라는 사태가 안겨준 혼돈을 떨쳐내지 못한 홍콩 사회의 불안한 모습이 배어 있다. 그 불안의 근저엔 `천안문 사태'가 놓여 있다. “홍콩이 `반환'을 두려워한 건 1989년의 천안문 학살을 보았기 때문이다. `반환'이란 이를테면 식민지 시대에 종지부를 찍는 일임에도, 홍콩인들이 그걸 두려워해야 한다는 건 아이러니다.” 그가 전하는 반환 이후의 홍콩은 아직 우려할 정도는 아니다. “천안문사건 추모식을 여는 곳은 현재 홍콩뿐이다. 매년 6월4일을 앞둔 주말 2만∼3만명이 촛불을 들고 모이는 이 추모식이 금지된다면, `홍콩은 망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만큼 이 행사는 홍콩이란 도시의 미래를 상징하는 행사다.” 감독은 `반환'이라는 큰 정치적 사건이 지나가자 “욕망과 성정체성 등 개인의 생활에 대한 고민이 앞으로 돌출하고 있다”고 최근 홍콩영화의 경향을 설명한다. 그런 상황은 `민주화'라는 큰 정치적 파도를 넘은 한국의 상황과도 닮았다. 그는 개인 문제든 사회 문제든 오랜 `고행'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본다. 영화 중간중간에 삽입된, 미미라는 주인공이 `유자피저대안계'라는 요리를 만드는 과정은 삶의 행로를 상징한다. “그것은 만드는데 까다롭기로 유명한 광둥 요리다. 사람들은 누구나 상처를 안고 치유를 갈망하지만, 인생에서 사랑과 평안 등 바라는 걸 찾기 위해선 시간을 견뎌야 한다.” 마카오 출신으로 홍콩과 뉴욕에서 영화를 공부한 찬 감독은 <베이징으로의 여정>(1998), <아듀, 마카오>(2000) 등 홍콩과 마카오의 `반환'을 다룬 두 편의 다큐멘터리를 만들기도 했다. 전주/ 글·사진 이상수 기자leess@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