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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1회 아카데미⑥] 요르고스 란티모스와 <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
송경원 2019-02-27

과잉되고 사치스러운데 현실적인

불길, 불경, 부조리, 기이, 기묘 그리고 추락과 파국.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의 영화를 표현할 단어들을 긁어모으다 보면 여러 갈래 나뉜 물길이 결국 한줄기로 모인다. 가족, 연인, 동화, 신화 등 어떤 세계에 머물건 간에 요르고스 란티모스의 나침반은 언제나 불편함을 가리켜 왔다. 그는 좋은 의미에게 관객에게 불편함을 선사하기 위해 갖은 수단을 동원한다. 하지만 란티모스에게 불편함이란 인간 혹은 관계의 본질에 다다르는 과정에 따라오는 부산물일 뿐 그 자체가 목적은 아니다. 그와 오래 호흡을 맞춰온 각본가 토니 맥나마라는 란티모스의 특질을 이렇게 설명한다. “요르고스 란티모스는 인간을 좀더 넓은 관점에서 바라보는 방식이 존재한다고 믿는다. 더 깊이 들여다볼수록 인간은 비뚤어지고 기이한 존재가 되고 관객은 바로 그런 모습에 반응한다.” <송곳니>(2009)에서 세상과 단절된 가족이 도달한 파국을 그리고, <더 랍스터>(2015)에서 동화와 설화 어딘가에서 기이한 사랑의 흔적을 더듬고, <킬링 디어>(2018)에서 신화와 상징의 부조리극을 서늘하게 보여줬던 란티모스가 이번엔 실제 역사를 배경으로 한 시대극으로 돌아왔다. 란티모스의 첫 번째 시대극인 <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이하 <더 페이버릿>)는 란티모스의 필모그래피에서 가장 대중적이고 규모가 큰 프로젝트다. 늘 직접 시나리오를 써왔던 란티모스가 다른 이의 각본으로 처음 연출한 영화이기도 하다. 여러 측면에서 란티모스에게 첫 경험을 선사한 기획이었지만 “의상, 전기, 인터넷을 빼곤 사실 별로 변한 게 없다”는 감독의 설명처럼 역사를 무대로 해도 란티모스가 추구하는 본질은 흔들리지 않는다. 선과 악, 강자와 약자를 구분할 수 없는 혼돈. 사물의 양면을 탐구하며 관계를 더듬는 란티모스의 촉각은 이제껏 본 적 없는 시대극을 탄생시켰다.

세명의 여성을 둘러싼 사랑과 권력의 생존 투쟁

<더 페이버릿>은 18세기 영국 스튜어트 왕조의 마지막 군주인 앤 여왕(올리비아 콜먼)과 그의 오랜 친구이자 연인인 사라 처칠(레이첼 바이스), 그리고 이들 사이에 끼어든 시녀 애비게일(에마 스톤)의 삼각관계를 다룬다. 권력과 사랑이 뒤얽힌 궁중 암투가 시작될 것 같지만 18세기 영국 왕실의 복잡한 정치 상황은 배경일 뿐 란티모스는 늘 그래왔듯 사적이고 은밀한 감정의 뿌리를 더듬으며 관계의 본질을 탐구한다. 사실 앤 여왕은 영화로 자주 다뤄지지 않은 게 이상할 만큼 복잡하고 드라마틱한 인물이다. 1702년 즉위, 12년의 제위 기간 내내 왕권과 신권의 대립 속에서 정치를 했고 프랑스와 전쟁 등 국외의 분쟁도 끊이지 않았다. 어려서부터 몸이 병약해 무려 17번의 임신을 했지만 계속된 유산과 사산 등으로 아이들을 모두 잃는 아픔을 겪었고 말년에는 실제로 휠체어를 타고 다닐 만큼 건강이 좋지 못했다. 그런 앤 여왕의 버팀목이 되어준 것이 어린 시절부터 우정을 쌓은 레이디 사라였다. 4살 연상이었던 사라는 앤 여왕 즉위 후 오랜 신뢰를 바탕으로 여러 직책을 맡는 등 정책 고문으로 나선다(배역을 맡은 올리비아 콜먼과 레이첼 바이스의 나이 차가 4살이 난다는 것도 재미있는 우연이다). 사라는 얼핏 유약한 동생을 돌봐주는 언니처럼 보이지만 영화는 앤 여왕과 사라가 우정 이상의 관계였다는 상상을 바탕으로 진행된다.

8개의 챕터로 구성된 이야기의 막을 여는 프롤로그. 연설을 마치고 나온 앤 여왕은 자신이 혀 짧은 소리를 하지 않았는지 칭얼대고 사라는 앤의 투정을 받아주며 다독인다. 앤은 자신이 키우는 토끼에게 인사를 하라고 하지만 사라는 섬뜩하다며 거부한다. 왕과 신하라는 지위가 무색할 정도의 편하고 무례한 대화는 두 사람의 이중적인 관계를 여실히 드러낸다. 권력을 놓고 보면 여왕과 신하이지만 애정을 놓고 볼 땐 앤 여왕이 약자의 위치에 놓여 있다. 사라는 앤의 신뢰와 애정을 바탕으로 왕을 어르고 달래며 섭정에 가까운 정치권력을 휘두르고 있는데, 그러던 어느 날 사라의 이종사촌이자 몰락한 귀족 애비게일이 사라를 찾아오면서 본격적인 생존 투쟁의 막이 열린다.

늘 본인이 시나리오를 쓰던 란티모스 감독이 데보라 데이비스가 쓴 시나리오를 본 후 세명의 주인공 여성이 균등한 비중으로 진행되는 지점에 끌렸다고 할 만큼 <더 페이버릿>은 세 여성의 빗나간 사랑, 뒤틀린 욕망 그리고 변화를 고르게 담아낸다. 이건 한 명의 캐릭터가 온전히 소유한 이야기라기보단 사랑과 욕망을 주제로 한 3중주 클래식 공연에 가깝다. <더 페이버릿>은 국가의 운명이 걸린 중대한 위치, 역사의 거대한 무대 위를 배경으로 ‘좋아하는 것’이라는 제목 그대로 인간의 사적이고 내밀한 욕망에 집중한다. 사라는 아름다운 미모에 뼈대 있는 귀족 가문 출신이며 남편은 전쟁영웅인, 그야말로 사랑도 권력도 모두 가진 결핍이 없는 인간이다. 반면 앤 여왕은 자신이 원한 바 없는 권력의 정점에 앉아 17명의 자식을 잃었고 그때마다 토끼에게 자식의 이름을 붙일 만큼 상실의 상처에 시달리는 외로운 인간이다. 사라와 앤은 전혀 다르지만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하는 관계다. 다만 공허함이 밀려올 때마다 음식을 먹고 토하길 반복하는 앤 여왕은 모자람 없는 사라가 자신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다고 느끼고, 그럴 때마다 변덕스러운 아이처럼 떼를 쓰고 질투한다. 한편 몰락한 귀족 애비게일은 추락에 대한 공포와 강렬한 상승 욕구를 지닌 인물이다. 그녀는 여왕의 상처와 결핍을 간파하고 위로해줌으로써 하녀에서 여왕의 전속 시녀, 나아가 다시 귀족으로 빠르게 위치를 다져간다. 애비게일이 앤 여왕의 마음을 파고들 수 있는 건 고통을 공유할 수 있는 지점이 있기 때문이다. 궁전에 입성할 때부터 마차에서 굴러떨어져 얼굴이 진흙범벅된 애비게일의 모습은, 오소리처럼 화장했다며 사라에게 놀림받는 앤 여왕과 겹친다. 영화가 하녀들의 텃세로 손에 상처를 입는 애비게일과 통풍으로 괴로워하는 앤 여왕의 장면을 연이어 편집하는 건 우연이 아니다. 애비게일은 약초로 여왕의 육체적 통증을 달래고, 토끼를 귀여워하며 여왕의 정신적 고통을 위로하며 여왕을 공략한다. 사라 역을 맡은 레이첼 바이스의 표현을 빌리자면 애비게일은 “<이브의 모든 것>(1950)에서 한때 자신의 우상이었던 배우 마고(베티 데이비스)의 성공을 가로채는 젊은 이브와 닮은꼴”이다. 문제는 애비게일의 욕망은 앤이라는 개인이 아니라 여왕이라는 권력을 향해 있다는 점이다. 각자 좋아하는 것을 얻기 위한 욕망의 방향이 엇갈릴 때 영화는 예정된 파국을 향해 우아하고 싸늘하게 걸음을 옮긴다.

가장 대중적이면서도 여전히 란티모스다운

란티모스는 “허락된 무대가 좁을수록 이야기의 심도는 깊어진다”고 말해왔다. <더 페이버릿> 역시 공간에 인물과 심리를 투사한 실내극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란티모스가 즐겨 사용하는 로앵글은 이번에도 여지없이 등장하는데 궁전의 화려하고 높은 천장과 맞물려 인물을 내리누르는 듯한 위압감을 발휘한다. 특히 와이드 앵글과 어안렌즈 등 왜곡된 이미지를 적극적으로 활용, 프레임 상부의 공허한 빈 공간을 통해 고독과 인간의 왜소함을 감각적으로 표현했다. 텅 빈 복도를 서성이며 울부짖는 앤 여왕이나 어둔 밤 미로 같은 궁전을 헤매는 애비게일의 모습은 권력의 무상함과 외로움을 고스란히 형상화한다. 여기에 하나 더, 여타 영화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이러한 이색적인 시점과 숏은 그 자체로 보는 재미와 색다른 감흥을 안기는 효과도 있다. 신선함과 불안감이 공존하는 이런 장면들은 긴장감을 유지시키는 중요한 기법인 동시에 란티모스가 바라보는 세계를 엿보는 창구이기도 한 셈이다. 만약 당신에게 란티모스의 세계관이 염세적이고 비극적이며 비관적으로 느껴진다면 그건 아마도 낙관적이고 희망적이며 밝은 이야기에 익숙해진 탓일 것이다. 란티모스의 시선은 항상 인물, 사물, 사건의 양면을 동시에 비춘다. “우아하고 심플하면서 복잡한, 세 가지 상태가 동시에 존재하는 잠재의식의 마술이자 질문의 연금술”(제작자 세시 뎀시)은 그렇게 신선함과 불편함 사이에서 진동하며 관객을 매혹시켜왔다. <더 페이버릿>은 란티모스 고유의 스타일은 여전히 살아 있는 가운데 관객이 좋아하는 것, 눈이 즐거운 것, 시대가 바라는 것을 충실히 채워넣으며 대중과의 접촉면을 확실히 넓혔다. 전작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추락의 낙차가 적어 아쉽게 느낄 수도 있지만 반대로 그만큼 좀더 친절하고 익숙하다. 동시에 과잉되고 사치스러운 한편 묘하게 현실적인 장면들이 주는 충돌의 쾌감을 한껏 만끽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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