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에 대해선 쉽게 안다고 말하면서 남들은 나에 대해 조금도 모른다고 여긴다. 타인의 가능성에 대해서는 ‘저 사람은 저게 다일 거야’라고 판단하면서, 자신에 대해서는 ‘나는 열심히 하지 않을 뿐’이라고 생각하는 건 또 어떤가. ‘사람에게 좀더 상냥하게 대해야지, 타인을 쉽게 재단하지 말아야지’라고 매번 다짐하면서도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그럴 때마다 책이라도 펼쳐본다. 상처를 주지도, 받지도 않고 남의 마음에 다가서는 데 독서 말고 달리 방법을 모르기 때문이다. 2월의 <씨네21> 북엔즈는 반복되는 하루 속에서 간과하기 쉬운 타인의 마음에 대해 고민하는 책을 시작으로 문을 연다. 박소란 시인의 시집, <한 사람의 닫힌 문>은 내내 누군가를 가여워한다. 타인을 가여워하는 마음은 동정과는 다르다. 가여워하고 안쓰러워하고 그리워함으로써 우리는 그 사람이 되어볼 수 있다. 영화를 공부하고 싶거나, 영화에 대해 좀더 알고 싶은 초보자를 위한 입문서 <시네 클래스>에는 고전부터 최근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영화들이 나온다. 영화를 만들고, 보는 행위는 사실 모르는 세계와 사람에 대한 호기심에서 비롯된다. 스토리텔링부터 비평에 이르기까지 영화에 대한 모든 것을 최대한 친절히 다루는 책이다. <소설&지도>는 소설 속 공간과 관계를 조감도로 표현했다. 소설의 핵심을 담은 독서록과 함께 일러스트레이터가 소설 주인공의 마음으로 가는 길을 지도로 그렸다. <백작부인>은 영화평론가 하스미 시게히코의 장편소설이다. 2차 세계대전 시기의 일본을 배경으로 백작부인과 지로라는 남자 고등학생의 이야기가 펼쳐지는데 주인공들의 인물 관계는 모호하지만 그들의 성행위에 대한 문장이 적나라한 탐미주의 소설이다. <연쇄 살인마 개구리 남자의 귀환>은 일본의 형법 39조를 소재로 범죄자의 책임능력에 대해 묻는다. 잔인하고 폭력적인 사건 속에서 악당의 마음속 지옥도가 그려진다. 에세이스트 레슬리 제이미슨의 <공감 연습>은 병증 체험과 질병, 낙태와 자해 행위, 소년들의 살인사건 등을 작가가 직접 겪거나 취재해 쓴 에세이다. 타인의 감정과 고통에 공감하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을 따라가다 보면 역시 남의 마음에 대해 내가 안다고 말하는 게 얼마나 큰 오만인지 통감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