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영화가 아니에요.” 지난 1월 23일 타계한 요나스 메카스가 영화를 만들기 시작했을 때 들은 말이라고 한다. 그때 메카스는 깨달았다고 한다. 자신이 할리우드의 언어가 아니라 지하의 언어를 배웠음을. 요컨대 메카스는 당시 영화계와 예술계에서 모두 아웃사이더였다. 그 후 그의 예술 세계를 인정받은 이후에도 그는 여전히 이방인의 눈을 견지했다. 이방인의 눈, 그것은 메카스가 평생에 걸쳐 영화를 만들게 하는 동력이었지만 메카스 자신이 선택한 것은 아니었다. 이방인으로서의 삶이 그에게 부여한 것이었다.
1922년 리투아니아에서 태어난 요나스 메카스는 어릴 때부터 시에 빠져들었고, 22살에 첫 시집을 낸다. 1944년 오스트리아로 가고자 했던 메카스는 나치에 붙잡혀 독일 강제수용소에서 8개월간 12시간씩 강제 노역에 시달렸다. 종전 후 난민촌을 전전하다가 1949년인 27살 때 뉴욕으로 이주한다. 메카스는 공장에서의 장시간 노동과 가난에 시달렸지만 몇 개월 지나지 않아 돈을 빌려 16mm 볼렉스 카메라를 구입해 자신의 삶을 기록하기 시작한다. 메카스는 글을 쓰며, 영화를 보고 또 찍으며 뉴욕의 실험영화 클럽에 합류했고, 1952년에는 전위영화작가인 한스 리히터의 강좌를 들으며 자신의 영화예술을 정립해나간다.
1954년, 이렇다 할 영화 비평지가 없던 미국에서 <필름 컬처>라는 비평지를 창간하고 1958년에는 대안적 시사 주간지 <빌리지 보이스>에서 상근 영화평론가로서 기사를 작성한다. 1962년에 필름메이커스 조합을 결성하고, 1964년에 세계 최대 전위예술 영화보관소 앤솔러지 필름 아카이브로 성장하게 되는 필름메이커스 시테마테크를 창설해 뉴 아메리칸 시네마 운동에 큰 영향을 끼친다. 또한 존 레넌과 오노 요코, 조지 마키우나스, 앤디 워홀, 백남준 등 전위예술가들과 교류하며 플럭서스 운동과도 관계를 맺는다.
메카스는 첫 번째 내러티브 장편영화 <건즈 오브 더 트리스>(1961)를 만들고, 2차 세계대전이 남긴 트라우마를 다룬 <영창>(1964)을 만든다. <영창>은 그의 두 번째 장편영화이자 마지막 장편영화이다. 그 후 1969년 <월든: 다이어리, 노트, 스케치>라는 ‘일기영화’를 만든 후부터는 일기영화에 천착한다.
2006년, 84살의 메카스는 자신만의 웹사이트 요나스메카스닷컴(www.jonasmekas.com)을 만들어 자신의 영화 일기를 업로드한다. 그리고 다음해인 2007년에는 매일 한편씩, 1년간 365편의 영화 일기를 만드는 <365일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이후에도 메카스의 영화 일기는 계속됐고, 메카스는 이 웹사이트에 지난해 11월까지 자신의 영화 일기를 업로드했다. 이런 영화 일기는 개인적인 일상에 집중할 것, 그리고 상업 자본으로부터 자유로울 것을 테제로 하는 뉴 아메리칸 시네마 운동에 대한 실천이었다.
메카스의 대표작 중 하나인 <월든: 다이어리, 노트, 스케치>는 메카스가 1960년대에 찍은 푸티지들을 모아 만든 영화로 메카스 영화의 대표적인 특징이 잘 드러난다. 그가 카메라에 담은 것은 특정한 사건이 아니라 매일 반복되는 일상이었다. 햇빛, 거리와 공원, 도로변의 무성한 풀 등등. 특별하지 않은 대상들을 정신없이 회전하는 카메라의 연속되지 않은 프레임에 담아냈다. 그렇게 공간들은 단절되고 이미지들은 부유하는 영화가 탄생했다. 이 영화는 1960년대 예술 현장을 담아내는 한편,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대표작 <월든>을 제목으로 정한 것에서 알 수 있듯 목가적 생활에 대한 염원과 자연이 주는 평화로움에 대한 찬양이 담겨 있다. 이것은 메카스가 떠나온 리투아니아에서 보낸 어린 시절과도 관련이 있을 것이다.
1976년에 완성한 <로스트, 로스트, 로스트>는 그가 뉴욕으로 이주한 지 몇 개월 지나지 않은 1950년부터 1963년 사이에 찍은 푸티지들을 모은 것이다. 이 영화에서 이주노동자의 삶과 가난, 상실감을 볼 수 있으며 이방인의 눈에 비친 당시의 뉴욕 모습을 볼 수 있다. 또한 메카스가 자신만의 영화 문법을 찾아가는 과정도 엿볼 수 있다. 영화는 일반적인 다큐멘터리 기법에서 점점 메카스만의 스타일로 변화한다. 메카스는 카메라 렌즈를 통해 보이는 사물 그대로가 아니라 자신이 느끼는 사물의 본질을 탐구하기 시작한다.
메카스 영화의 대표적인 특징 중 하나는 단일 프레임 촬영에 있다. 일반적으로 영화는 초당 24프레임을 연속 촬영한 필름을 통해 연속된 영상을 보여준다. 그러나 메카스는 초당 4개 이하의 프레임만 촬영한다. 이러한 저속촬영을 통해 관객은 1초 동안 대상의 수십초를 볼 수 있다. 시간을 응축하는 것이다. 불연속성과 파편화된 이미지들 속에서 관객은 보이지 않은 프레임들 사이를 생각한다. 메카스는 말한다. “영화는 단일 프레임들의 사이에 있다.” 동시에 메카스는 파편화를 통해 시간을 해체한다.
<우연히 나는 아름다움의 섬광을 보았다>(2000)를 보면 고양이가 등장하고 몇분 뒤에 고양이가 다시 등장한다. 파편화된 이미지로 인해 관객은 이 고양이를 앞에서 보았던 고양이와 같은 시간대에 촬영한 것인지 아니면 그 이전이나 이후에 촬영한 것인지 알 수 없다. 심지어 같은 고양이인지조차 알아차리기 힘들다. 푸티지들의 나열인 메카스 영화에서 시간은 완전한 비선형을 이룬다. 이미지들은 더이상 시간 속에 내재하지 않으며, 또한 이미지들은 더이상 사물들의 도상이 되지 않는다. 이미지들은 데자뷔가 되고, 그럼으로써 이미지는 (사물 그 자체가 아니라) 이미지 자체로 인식된다. 이미지의 실재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파편화된 이미지들, 이미지들과 이질적으로 접속되는 내레이션 기법은 관객이 영화와 거리를 유지한 채 영화를 하나의 기록물로 받아들이게 한다. 메카스의 영화는 <365일 프로젝트>에서 잘 드러나듯이 마치 다른 시간과 공간에서 온 인류학자가 현대의 도시인들을 관찰한 일지 같은 느낌을 주기도 한다.
메카스는 영화에서 추구하는 이상이 ‘고바야시 잇사의 하이쿠와 같다’고 말했다. 메카스는 자신의 영화가 하이쿠처럼 보는 순간에 집중해서 순간의 본질을 담는 것이며, 자신을 이해하는 일인 동시에 위험한 일이라고 말했다. 잇사를 통해 메카스를 좀더 이해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얼마나 이상한 일인가, 벚꽃 아래 이렇게 살아 있다는 것은!” 잇사에게, 그리고 메카스에게 살아 있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기에 기록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메카스의 영화 일기에는 일상의 특별함을 깨달은 사람이 느끼는 행복이 깃들어 있다. 메카스에게 영화 만들기는 실천인 동시에 삶 그 자체였다.
누구나 영화 일기를 쓰고 공유할 수 있는 ‘요나스 메카스적’ 시대는 이미 도래했다. 다만, 무엇을 기록해야 할 것인가? 너무 익숙한 일상에서 어떤 특별함을 찾아낼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메카스가 도움을 줄 수 있을 것 같다. 자신을 이해할 수 있을 때까지 순간에 집중할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