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5학년, 전학 첫날의 일이다. 쉬는 시간이 되자마자 반 아이들은 통과의례처럼 이런저런 것들을 물어봤고, 그 질문 중 하나는 100m 달리기 기록이었다. 당시 그 학교에서 달리기 시합이 한창 유행인 모양이었다. 나는 당시 이제 막 과체중으로 진입 중이라 작고 통통한 체격이었지만, 100m 달리기는 14초대, 그 전 학교에서 여자 중 최고 기록을 보유하고 있었다. 기록을 말해주자 갑자기 호의적이던 아이들의 태도가 확 바뀌었다. 아무래도 믿을 수 없다는 눈치였다. 진짜야. 항상 계주 주자로 나갔다고. 그럼 증명해봐. 내일 종례 후 시합이다. 그렇게 전학 온 첫주 내내 나는 이틀에 한번꼴로 운동장을 뛰었다. 세 번째 경기에는 구경꾼들이 확연하게 늘었다. 그때부터는 더이상 전학생인 내 실력을 검증하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 어느새 초등학교 5학년 여학생 중 달리기 최강자를 결정하는 분위기로 달아올라 있었다.
달리기는 항상 좋아했으니까, 이걸로 새로운 학교에 적응할 수 있다면 얼마든지 뛸 수 있다는 마음으로 나는 얼른 수업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생각해보면 눈치가 없어도 너무 없었다. 세 번째 경기를 이기고 나자, 전학생에게 이렇게 꺾일 수는 없다고 생각했던 아이들 사이에 어떤 이름이 계속 언급되었다. 아마도 반 최고의 실력자인 듯했다. 하지만 지목된 아이는 단호히 거부했다. 싫다고 했잖아. 다른 반 남자애들도 잔뜩 구경 온다며. 그 아이는 정말 싫은 모양이었다. 나는 그저 어깨를 으쓱할 뿐이었다. 싫다면 할 수 없지. 그런데 남자애들이 구경 오는 건 왜 싫은데? 그런 데 꽤 둔했던 나는 물었다. 의외의 대답이 돌아왔다. 놀린단 말야. 응? 왜? 가슴이 흔들린다고 놀린다고! 생각지도 못한 답을 듣고 조금 멍해졌다. 정확히 무슨 뜻인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반 아이들도 더이상은 권유할 수 없다고 생각했는지 물러났고, 나는 마지막 한 경기만을 남겨두었다. 운동장 100m 달리기 스타트라인에 섰다. 지금까지 중 가장 많은 아이들이 구경하러 남아 있었다. 시작 신호와 함께 힘껏 달려, 절반을 지나고, 나머지 절반을 지났다. 이제 거의 막바지 결승선을 남겨둔 상태에서 아이들의 얼굴이 또렷하게 보였다. 그중 몇명의 얼굴에는 웃음기가 잔뜩 어려 있었다.
그때 갑자기 가슴이 흔들린다고 놀린다던 그 아이의 말이 생각났고 그전까지는 있는 것조차 몰랐던 내 가슴이 세차게 흔들리는 게 느껴졌다. 웃고 있는 아이들이 모두 가슴 얘기를 하는 것 같았다. 흔들리는 가슴을 아무도 보지 못하게 하려고 손으로 티셔츠를 잡아 늘리는 사이 상대는 이미 결승점을 지나고 있었다. 그날 이후로 나는 또래보다 큰 편인 가슴을 동여맬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 골몰했고, 그러다보니 점점 달리기 자체를 즐길 수 없게 되었다. 여자의 몸으로 체육활동에 참여할 때 겪는 어려움은 나만의 경험은 아닐 것이다. 여성의 몸은 ‘아직도’ 전쟁터이다. 다만 달라진 점이 있다면 여성들이 점점 포기나 극복보다는 저항과 연대를 선택하고 있다는 점이다. 2019년에도 부디 여자들의 ‘달리기’가 멈추지 않기를. 위대하고 용감한 싸움을 시작한 여자 선수들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