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서부 여행을 갔을 때의 일이다. 버스를 타고 하루 열몇시간씩 이동하는 날이 이어졌다. 창밖의 풍경은 가끔 화성 같았고, 대체로 그곳이 그곳 같았다. 지평선을 원 없이 보던 나날이었다. 가이드는 지루한 낮의 사막을 지나며 밤의 사막에 대해 들려주었다. 그는 별을 보기 위해 인간이 만든 불빛이 없는 높은 곳에 이르러 모든 불을 끄고 차에서 내렸는데, 다음 순간 너무나 두려워서 견딜 수가 없었단다. 하늘이 별로 가득한데, 그 모두가 마치 쏟아져내리는 듯 했다고. 가장 많은 별과 가장 큰 두려움. 그 이야기를 들으며 부러웠던 기억이 난다. 나는 압사당할 공포를 느끼며 별을 본 적이 없다. 내가 밤의 자연에 대해 모르는 건 그 외에도 많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달빛 속을 걷다>는 걷기에 대한 글 다섯편을 엮은 책이다. 첫글이 표제작인데, 밤산책에 대해 썼다. 자연관찰가로 사상가로 유명한, <월든>의 작가답게, 그는 밤의 자연 속을 걷는다. “눈 못지않게 냄새를 따라 걷는다. 이제 나무마다, 밭마다, 숲마다 향기가 난다. 포원에서는 야생 진달래 향기가, 길에서는 들국화 향기가 난다. 갓 수염이 자란 옥수수에서는 특유의 식물 마른 냄새가 난다. 전에는 본 적 없는 실개천에서 졸졸대는 소리가 난다. 가끔 언덕 꼭대기에서 따뜻한 공기가 확 밀려온다. 정오의 무더운 평야에 있다가 올라온 공기도 낮 이야기를 들려준다.” 전에는 본 적 없는 실개천을 듣는다. 캠핑할 때 이런 일은 드물지 않다. 내가 <달빛 속을 걷다>에서 가장 사랑하는 구절은 이것이다. “바람이 몹시 불던 날, 나와 함께 항해하던 친구가 달 밝은 밤에 항해할 때는 극한 상황에서도 별 몇개만 희미하게 빛나면 이럭저럭 꾸려나갈 수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 별은 항상 얻을 수 있는 빵과 치즈같다고 했다.”
같은 겨울이니 ‘겨울 산책’이라는 제목의 산문을 읽어보는 것도 권할 만하다. 도심에 사는 이가 소로를 읽는다는 말은 달 착륙에 대해 읽는 수준으로 아득한 이야기일 뿐이다. 그럼에도, 소로도 나와 같구나 싶어 웃을 대목은 있기 마련이다. “1년 중 가장 추운 날 황량한 언덕 꼭대기에 서 있는 여행자의 외투 안 가슴속에서는 집 안의 어떤 난롯불보다 따뜻한 불이 타고 있다. 그의 가슴속에 남쪽 나라가 있다. 거기로 새와 곤충이 모두 몰려오며 가슴속 따뜻한 샘 주위로 울새와 종달새가 모여든다.” 내 마음속에도 여름이 있다. 그 안에 있는 것은 무엇인가 들여다보았더니, 아이스아메리카노와 수박 그리고 에어컨이 있다. 자연에 대한 글을 자연보다 더 좋아하는 셈이다. 도시인간이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