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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덤>은 슬픔의 전염에 관한 드라마다
장영엽 2019-01-17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킹덤> 촬영 현장 취재와 배우 주지훈, 류승룡, 배두나 인터뷰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킹덤>이 1월25일 전세계 동시 공개된다. <킹덤>은 인터넷 스트리밍 서비스 기업 넷플릭스가 선보이는 최초의 오리지널 한국 드라마다. 이 작품은 흡인력 있는 연출과 각본으로 이름을 알린 김성훈 감독(<끝까지 간다> <터널>)과 김은희 작가(<시그널> <유령>)의 만남, 권유진 의상 디자이너, 이후경 미술감독 등 베테랑 영화 스탭들의 참여로 일찌감치 화제가 됐다. 총 6부작으로 구성된 <킹덤>은 의문의 역병이 창궐한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미스터리한 재난의 전말을 조사하는 왕세자 일행의 여정을 다룬다. 2018년 3월, 경기도 남양주종합촬영소에서 열린 <킹덤>의 현장 공개 행사를 통해 아직 많은 부분이 베일에 싸인 이 작품의 밑그림을 짐작해볼 수 있었다. <씨네21>은 국내에서는 단독으로 아시아 7개국(대만, 필리핀, 일본, 홍콩, 싱가포르, 타이, 말레이시아)에서 모인 기자들과 함께 <킹덤>의 주요 제작진을 만나 제작 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촬영 현장을 취재했다. 이 자리에서 알게 된 몇 가지 흥미로운 사실를 전한다. 주연배우 주지훈, 류승룡, 배두나의 인터뷰도 함께 실었다.

눈앞에 서 있는 한복 차림의 배우 배두나가 아니었다면 여기가 한국이라는 사실을 잠시 잊을 뻔했다. 2018년 3월 12일 오후, 일본어와 중국어, 한국어와 영어와 타이어가 동시다발적으로 들려오던 경기도 남양주종합촬영소 운당 세트장의 풍경이다. 이날 운당 세트장과 춘사관에서는 아시아 8개국(대만, 필리핀, 일본, 홍콩, 싱가포르, 타이, 말레이시아, 한국)의 주요 매체를 대상으로 한 넷플릭스 최초의 오리지널 한국 드라마 <킹덤>의 현장 공개 행사가 진행됐다. 영화 <신과 함께> 시리즈가 아시아 전역 개봉에 앞서 한국에서 마케팅 행사를 진행한 바 있지만, 국내에서 제작하는 영상 콘텐츠의 홍보를 위해 외신 기자들을 초청하는 건 여전히 드문 경우이기에 아시아 각국에서 모여든 기자들은 <킹덤> 현장 공개 행사에 큰 관심과 흥미를 보였다.

“여기가 한국 드라마에 많이 나오는 그 왕실 세트장인가요?” “실제 조선시대의 궁궐도 이 세트와 비슷하게 생겼나요?” <씨네21>은 한국에서 참여한 유일한 매체라는 이유로 현장 공개 행사에 동행한 아시아 기자들의 쏟아지는 질문에 답해야 했다. 그 과정에서 느낀 건 한국의 시청자로서 너무나 익숙하게 받아들이던 조선시대의 의상과 풍경이 타국 시청자들에게는 색다른 매력으로 다가갈 수 있겠다는 점이었다. “<킹덤>은 국내뿐 아니라 세계 여러 나라에서 방영한다는 점이 굉장히 신경 쓰인 작품이다. 서양인들의 인식으로는 대개 아시아 하면 대표적으로 소비되는 모습이 중국과 일본의 풍경인데, 이 작품을 통해 한국이 가진 여러 가지 특성을 가감 없이 보여줄 수 있을 것 같았다.” <킹덤> 현장에서 만난 이후경 미술감독의 말이다. 이날의 경험으로 ‘전세계 동시 공개’를 특성으로 하는 넷플릭스라는 플랫폼의 위력을 어렴풋이 실감할 수 있었다. 배급과 유통의 어려움 없이 곧바로 전세계 각국의 넷플릭스 가입자에게 가닿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콘텐츠는 로컬 콘텐츠의 매력을 글로벌하게 알리고자 하는 제작자와 새로운 즐거움을 찾는 각국의 소비자에게 효율적인 연결고리가 되어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 의미에서 넷플릭스의 첫 오리지널 한국 드라마 <킹덤>이 공개되고 난 뒤 국내외적으로 어떤 반향을 일으킬지 더더욱 궁금해졌다.

드라마 <킹덤>은 TV드라마 <시그널> <유령> <싸인> 등의 각본을 쓴 김은희 작가가 지난 2011년부터 구상한 작품이다. <킹덤>의 촬영 현장에서 김성훈 감독과 함께 기자 간담회를 진행한 그는 좀비라는 소재를 한국적으로 해석하는 과정에서 “굶주린 역병 환자들로 가득 찬 조선시대의 풍경”을 떠올리게 되었다고 말했다. 권력에 눈이 먼 자들 때문에 왕도, 백성도 자신의 생존을 위해 싸워야 하는 조선에서 <킹덤>의 이야기는 시작된다. 의문의 역병이 삽시간에 나라를 뒤덮고, 조선의 왕세자 창(주지훈)이 이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나라 전체를 위협하는 잔혹한 진실이 모습을 드러낸다. 김성훈 감독은 “기존의 많은 좀비물이 있지만 <킹덤>은 ‘이야기’에 차별성이 있다”고 말했다. “6부작이 전개되는 동안 좀비가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해도 재미있게 볼 수 있을 만큼 탄탄한 서사 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란다. 그는 “조선이라는 세계의 정적인 아름다움과 좀비라는 존재의 섬뜩하고 동적인 쾌감이 상충했을 때 자아내는 긴장감과 미학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라는 말로 <킹덤>을 요약했다.

김은희 작가에 따르면 <킹덤>에는 조선시대의 각 계급을 대변하는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한다. 배우 주지훈이 나라에 퍼진 역병을 조사하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나서는 조선 왕세자 창을, 류승룡이 왕보다 더 큰 권력을 지닌 조정의 실세 조학주를 연기하며, 배두나가 사람을 좀비로 만드는 역병의 최초 목격자이자 왕세자 창을 돌보는 의녀 서비를 연기한다. 이 밖에도 왕세자 창에게 충성을 다하는 호위무사 무영(김상호), 정계에 몸담으며 정체를 숨겨운 전사이자 존경받는 학자로 창을 돕는 안현(허준호), 무능하고 타락한 사또 범팔(전석호)과 좀비의 공격으로부터 살아남은 생존자이자 선악의 구분이 모호한 미스터리한 인물 영신(김성규) 등 다양한 인물이 극을 이끌 예정이다. 김은희 작가는 기자 간담회에서 <킹덤>의 주요 인물을 어떤 계기로 캐스팅하게 되었는지 들려줬다. 가장 먼저 캐스팅한 배우는 류승룡으로, “극을 주도하는 악역을 단조롭지 않고 복합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배우”이기 때문에 김성훈 감독과 함께 섭외에 공을 많이 들였다고 한다. 주인공 창을 연기하는 주지훈의 경우 “나약하던 캐릭터가 역경을 거치며 성장해나가는 모습”이 중요한 <킹덤>의 서사에 어울리는 강한 이미지와 나약한 이미지를 모두 갖추고 있어 캐스팅했다고. 김성훈 감독은 이에 덧붙여 “배두나 배우는 본인이 가지고 있는 능동적인 모습이 조선시대 여성이 겪어야 했을 시대적 한계를 벗어나는 데 큰 영향을 줬다고 생각한다”는 캐스팅 비화를 전했다.

실제 드라마 촬영을 앞두고 조선시대 복장으로 기자들 앞에 나타난 7명의 주연배우들(주지훈, 류승룡, 배두나, 김상호, 허준호, 전석호, 김성규)은 취재진의 열렬한 환호를 받았다. 유난히 추웠던 2018년 겨울, 한복을 입고 촬영에 임해야 했던 배우들은 혹독한 날씨가 <킹덤> 현장의 가장 큰 장애물이었다고 입을 모았다. 저마다 극중 맡은 계급이 다르고, 그에 따라 옷의 재질도 달라지기에 천민 출신 영신을 연기하는 김성규 배우는 삼베옷만 입고 나오는 장면이 대부분이라 고생이 많았다고. 하지만 “한국의 드라마 제작 환경이 가질 수 없는 긴 제작 시간과 한국영화가 가질 수 없는 긴 서사구조를 동시에 취할 수 있는”(김상호) 넷플릭스 시스템의 매력과 배우들의 끈끈한 팀워크에 대해서만큼은 누구도 이견 없이 만족하는 분위기였다. 서비 역의 배두나는 <킹덤> 현장의 분위기 메이커로 주지훈을 꼽으며 “고된 촬영이 많았지만 모든 스탭을 편안하게 만들어주려는 노력이 인상적이었다”는 소감을 전했다. 주지훈은 배두나가 연기하는 서비라는 캐릭터가 “조선시대를 상징하는 여성성을 뛰어넘는 인물”이라며 “서비는 <킹덤>의 거의 모든 등장인물과 ‘이렇게도 연결될 수 있구나’ 하는 여지를 항상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 점을 지켜보는 재미가 있을 것”이라며 관전 포인트를 귀띔했다. 이어지는 Q&A 세션에서는 <킹덤>의 다음 시즌에 대한 질문도 나왔는데, 배두나는 “사실 시즌제로 길게 보고 가는 드라마라 두 번째, 세 번째 시즌이 어떻게 나올지 잘 모르겠다”며 “배우로서 어떻게 연결되든 다 말이 되게끔 연기하고 있다”는 말로 기자들을 웃게 만들었다.

<킹덤>의 프로덕션 디자인과 시각적 관전 포인트를 가늠할 만한 세션도 있었다. <터널> <곡성> <군함도> 등을 작업한 이후경 미술감독과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광해, 왕이 된 남자> <명량> 등을 작업한 영화의상 분야의 마스터 권유진 의상 디자이너가 참여한 이 세션에서는 <킹덤>이 구현할 좀비의 모습과 조선시대의 풍경을 짐작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 오갔다. 권유진 의상 디자이너는 “왕권을 둘러싼 거대한 음모의 이야기가 펼쳐지는 가운데 좀비가 매개체로 등장하기 때문에, <킹덤>의 의상을 작업하며 좀비에 집중하기보다는 왕권을 둘러싼 음모와 등장인물들의 인간적 고뇌, 왕세자가 성장하는 과정에 주목했다”는 제작기를 전했다. 좀비보다는 좀비가 되기 이전의 사람에 주목한다는 원칙은 이후경 미술감독의 프로덕션 디자인 작업에도 그대로 적용됐다. 그는 “드라마에 나오는 좀비들이 외형적으로는 좀비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지금 시대에 살고 있는 하층민들, 여러 가지 이유로 고통받고 있는 일반 사람들의 모습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라며 조선시대에 조명받지 못했던 하층민의 실제 생활 모습을 <킹덤>의 미술에 리얼하게 담아내려 노력했다고 말했다.

시각적인 측면에서 <킹덤>의 미술팀이 가장 고민한 건 ‘좀비의 근원’에 대한 문제였다. 이후경 미술감독에 따르면 <킹덤>의 좀비는 궁에서 권력 다툼이 일어나던 시기, 왕이 죽은 왕을 되살리는 과정에서 도의적으로 해서는 안 될, 자연현상을 거스르는 행위를 하고 그로 인해 죽은 왕이 살아나며 처음으로 조선에 모습을 드러내게 된다. 왕으로부터 시작된 역병이 조선 전역으로 어떻게 퍼져나가게 할지를 고민하던 미술팀은 “좀비가 된 왕이 숙주가 되어 벌레를 매개체로 역병을 전염시킨다”는 가설을 토대로 작업했다고 한다. 좀비가 된 사람들을 표현하기 위해 조선시대 서민들의 외양을 기록한 다양한 역사적 자료를 찾던 미술팀은 “팍팍했던 당시 서민들의 모습만으로도 요즘 사람들의 시선에는 충분히 좀비처럼 보일 수 있다”는 생각에 좀비가 가진 전형적인 요소를 지극히 현실적이면서도 효율적으로 설정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그 결과 이빨이 날카롭고 피를 구걸하는, 조선시대 서민의 리얼리티를 담은 좀비가 탄생할 수 있었다고 이후경 미술감독은 말했다. 권유진 의상 디자이너에 따르면 좀비가 된 사람들을 위해 좀비가 되기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유형의 코스튬이 필요하지는 않았다. “아름답고 평화로운 삶을 살던 사람들이 좀비가 되어 인간성을 상실하고 처절하게 무너져내리는 과정”을 표현하기 위해 그는 좀비가 되기 이전, 사람들의 삶을 상징하는 옷을 더욱 아름답게 표현하는 방식으로 대비를 주었다고 한다.

“<킹덤>을 통해 표현하고 싶었던 건 슬픔과 동정심이다.” 김은희 작가는 드라마에 반드시 포함하고자 한 요소를 묻는 외신 기자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굶주림으로 인해 역병이 퍼지고, 헐벗은 백성들이 결국 좀비가 되어가는 상황을 보여주며 사회에 만연한 슬픔을 표현하고 싶었다는 것이다. 김은희 작가의 이러한 의도는 <킹덤>이 로드 트립의 특성을 지니게 된 이유와 맞닿아 있을 것이다. 반역자로 몰려 궁에서 쫓겨난 왕세자 창은 ‘조선의 끝’에 당도해 굶주림 끝에 괴물이 되어버린 이들을 목격한다. 결국 <킹덤>은 조선의 민낯을 목격한 창이 다시 궁으로 향하는 여정을 조명한 작품일 것이다. 길 위에서 그가 마주하게 될 슬픔은 무엇일까. 어쩌면 그 슬픔은 요즘 한국 사회의 모습과 연결되는 정서가 아닐까. 현실을 닮은 좀비 사극 스릴러, <킹덤>이 왕국의 문을 열어젖힐 날이 머지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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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넷플릭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