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온 가게에서는 반드시 그 가게의 이름을 딴 커피를 마시는 거예요.” 처음 방문한 카페가 커피를 잘하는 집이면 나도 항상 그렇게 한다. 가게 이름을 딴 블렌드 커피를 마신다. 이른바 ‘시그니처’ 드링크인 셈이다. 최근 한국에는 자기 가게 스타일로 원두를 배합한 블렌드 커피가 메뉴로 있는 경우가 줄었지만 말이다. 요코이 에미의 만화 <카페에서 커피를>에서 죽은 아내가 한 저 말을 떠올리며 커피숍 이름을 딴 커피를 주문하는 백발의 남자가 경험하는 감정들을 따라가다가, 커피 한잔에 담긴 것들을 떠올려보게 되었다.
<카페에서 커피를>은 연작 단편집이다. 한 이야기의 배경에 등장한 인물이 다음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기도 하고, 혹은 뒤에 다시 등장하기도 한다. 그렇다고 마지막에 이야기가 하나로 뭉쳐지는 식은 아니다. 그저 커피 한잔을 비우듯 이야기는 마무리. 끝. 카페에 가서 마시는 커피만 등장하지도 않는다. 도심부터 농촌까지 놓이는 곳이 바뀌며 수명을 이어가는 커피 자판기가 주인공일 때도 있고, 친구와 시끌벅적 수다 떠는 자리에서 마시는 커피일 때도 있고, 복지회관에서 시간을 보내는 노인들이 마시는 커피일 때도 있다. 야마카와 나오토의 <커피 한 잔 더>, 허영만과 이호준의 <커피 한잔 할까요?> 같은 만화들이 커피 잘 내리는 법을 중점적으로 다루는 커피 교과서 역할을 겸한다면, <카페에서 커피를>은 그저 커피를 둘러싼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아직 사귀는 단계는 아닌 두 사람이 헤어지기 아쉬워 길거리 자판기 앞에서 커피 한잔을 핑계로 시간을 보내는 광경이라든가, 마음에 드는 사람과 다시 만날 핑계로 “이 동네 맛집 많이 아신다면서요?”로 접근해 오래된 커피숍에 갔다가 실망하고 그 때문에 오히려 가까워지는 상황이라든가 하는 이야기들. 부부간의 대화를 되살리는 데 커피숍 데이트가 활용되는가 하면, 부부가 욕조에서 서로 놀리며 시시콜콜한 대화를 나누는 시간에 커피가 함께하기도 한다. 이성애 로맨스가 커피 한잔과 관련해 가장 많이 등장하는데, 추억팔이에 여념 없는 노인들의 오후, 야외에서 간식을 먹을 때 고구마에 곁들이는 커피, 난생처음으로 조금 마셔본 커피의 맛(“악, 써-!”) 등이 더해지면서 읽는 쪽의 추억을 불러낸다. 즉흥적으로 간 커피숍에서 사별한 아내가 커피를 좋아했던 추억을 떠올리며, 자기가 젊었을 때 나온 전등갓이 그새 빈티지 취급을 받으며 젊은 손님들에게 “귀여워~”라는 말을 듣는 모습을 바라보는 사람을 담아내는 요코이 에미의 시선이 마음에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