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처럼 테이블 앞에 앉았다. 노트북과 커피잔을 내려놓은 후 지갑을 꺼냈다. 응? 이게 뭐지. 매일 들고 다니는 것이 갑자기 낯설게 느껴졌다. 살바토레 페라가모? 내가 이런 걸 살 리가 없는데. 그렇구나. 네가 준 것이구나. 그러고 보니 일체형 스킨로션도, 필터가 남다르다는 샤워기도 모두 네가 준 것이다. 의식도 못하고 한참을 살았다. 튼튼하고 유용한 것만 주었기에 버릴 고민조차 하지 않고 살았다. 넌 좋은 사람이었구나.
2018년 마지막 날 이문세 콘서트에 다녀왔다. 체조경기장은 컸지만 1만2천명은 오순도순 모여 앉았다. 가장 좋았던 순간은 역시 그가 <시를 위한 시>를 부를 때였다. 가장 아끼는 노래다. 하지만 새로 얻은 노래는 <희미해서>다. 지금도 이 노래를 듣고 있다.
<희미해서>는 헤이즈가 작사·작곡한 노래다. 그리고 헤이즈의 말이 맞다. 멀어지면서 아름다워졌고 희미해서 더 아름답다. 이제 나쁜 건 생각나지 않는다. 마음을 다쳤던 이유도 생각나지 않는다. 너의 얼굴도 이제 희미하다. 그 모든 게 이제는 애써 떠올려야 하는 비싼 기억이 됐다. 하지만 그래서 더 아름답다.
모으는 걸 좋아한다. 좋아하는 걸 얻을 땐 늘 기쁘다. 그래서 노래도 열심히 모은다. 하지만 노래는 왜 얻을수록 슬퍼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