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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모이> 윤계상 - 강렬함에서 진중함으로
김성훈 2019-01-01

“뿌리보다 잎사귀를 어떻게 표현할지 고민이 많았다.” <말모이>에서 윤계상이 연기한 정환은 조선어학회 대표로, 주시경 선생이 남긴 원고를 가지고 사전을 만들기 위해 우리말, 우리글을 모으는 ‘말모이’를 이끌어가는 역할이다. 말과 글은 그 나라와 민족의 얼이고, 우리말과 우리글을 사랑하는 일이 우리나라의 얼을 지키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인물이다. 자칫 잘못하면 전형적인 캐릭터로 비칠 수 있는데 윤계상은 정환 역에 어떻게 고민하고 접근했을까.

-처음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 어땠나.

=이 영화는 전작 <범죄도시>(2017)가 끝난 뒤, 밝은 이야기로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줄 만한 작품이 뭐가 있을까 고민하다가 만난 작품이다. 일제강점기, 사람들이 조선어학회를 만들어 전국의 우리말을 모았던 이야기가 너무 재미있고 따뜻했다. 영화로 만들어지면 사람들에게 어떤 감동을 줄 수 있을지 궁금했고, 그래서 하고 싶었다. 또, (유)해진 형이 하기로 결정했다는 얘기를 듣고 해진 형을 믿고 가기로 했다.

-정환은 어떤 인물로 다가오던가.

=시나리오를 읽는 내내 정환에게서 나를 발견했다. 내가 고집이 무척 세다. 한번 결심하면 성공하든 실패하든 쭉 밀고 가야 하는 성격이다. 나이가 들고, 지난해 <범죄도시> 작업을 하면서 느낀 게 있는데 사람의 의지만큼이나 뜻이 맞는 사람들이 힘을 모아야 그 뜻이 기적처럼 이루어질 수 있다는 사실이다. 정환 또한 뜻이 맞는 사람들과 함께 있지 않나. 이 영화를 통해 그 메시지를 전하고 싶다. 무엇보다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조선어학회 사건을 알리고 싶다.

-처음 연기를 시작했을 때는 협업의 중요성과 관련한 고민을 했을 것 같은데.

=그때는 내 의지를 절실하게 보여주면 사람들이 한두명씩 모여들어 뜻이 이루어질 줄 알았다. 하지만 혼자 힘으로는 뜻이나 목표가 이루어지지 않았고, 오히려 더 목마르고 아픔을 겪었던 것 같다.

-조선어학회 사건에 참여한 사람들이 많은데 정환은 그중에서 누구를 모델로 만들어졌나.

=누구를 모델로 만들어진 캐릭터인지 알고 있지만 여러 이유 때문에 얘기할 수 없다. 모티브가 된 사건은 있다. 분명한 것은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해 만들어진 이야기라 사실적으로 보여주는 게 중요하다는 점이다.

-전작을 통틀어 안경을 쓴 건 이번이 처음 아닌가.

=처음이다. 평소 나와 달리 지적으로 보이지 않나. (웃음) 지식인의 면모를 보여주기 위해 안경을 쓰면 좋겠다 싶었고, 감독님께 이 아이디어를 냈다. 평소 시력이 나쁘고 밤에 빛 번짐 현상이 있어 라식수술을 할 수 없었던 터라 이번 영화에서 안경을 쓴 채 작업할 수 있어 너무 좋았다.

-안경 덕분인지 <범죄도시>의 장첸과 확실히 달라 보이더라.

=그렇게 보일 수 있다면 좋겠다. 장첸으로부터 빨리 벗어나고 싶었다. (웃음) 장첸은 배우로서 만나기 쉽지 않은 매력적인 역할이지만 강렬한 이미지에 매몰될 수 있어 위험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장첸으로부터 빨리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새로운 역할을 찾아서 잘하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이 없는 것 같다. 그게 이 영화에서 맡은 정환이다.

-엄유나 감독과의 작업은 어땠나.

=정환은 자칫 잘못 연기하면 전형적인 인물이 될 위험이 크다. 촬영 내내 단 한번도 쉽게 가지 않았던 것도 그래서다. 분명한 건 배우가 힘들어야 좋은 영화가 나올 수 있다는 사실이다.

-개인적인 질문도 하고 싶다. god 멤버들과 함께 20주년 콘서트의 서울 공연을 마쳤는데.

=멤버들과 함께 예능 프로그램 <같이 걸을까>에 출연해 산티아고 순례길을 다녀온 것은 정말 좋은 시간이었다. 하나된 느낌이 들어 이번 콘서트가 남달랐고 좋았다.

-멤버 모두 나이가 들어 무대에 오르는 게 힘들었겠다. (웃음)

=태우 빼고 모두 40대다. 팬들에게 미안한 얘기지만 체력이 예전만 못해 안무를 많이 줄여서 열심히 했다. (웃음) 연기를 하는 상황에서 god 활동을 함께할 수 있어 좋다. 누군가가 인생에서 플러스가 됐던 게 무엇이냐고 물어보면 ‘god 멤버가 된 거’라고 대답하고 싶다.

-<말모이> 개봉을 앞두고 있는데 어떤가.

=<범죄도시>를 찍은 뒤 조금이라도 잘못 판단하면 느슨해질 수 있던 차에 연기를 처음 시작한다는 마음가짐을 잡을 수 있게 해준 작품이다. 앞으로 연기를 더 잘하고 싶다.

-지금도 연기를 잘하지 않나.

=스스로 연기를 잘한다는 생각을 한번도 해본 적 없다. 지금도 <말모이> 찍었을 때를 생각하면 숨고 싶을 만큼 괴로운데 모니터링 시사결과가 잘 나와서 그나마 버티고 있다. 사실 현장에서 테이크가 스무번 넘게 가서 죽고 싶었던 적도 있다. 그런 과정을 겪으면서 이번에도 성장했을 거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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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롯데엔터테인먼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