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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왕이여, 영원하라!
윤가은(영화감독) 일러스트레이션 마이자 2018-12-12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가 한달 넘게 흥행을 이어가더니 마침내 누적 관객수 600만명을 기록했다. 이로써 이른바 <보헤미안 랩소디>는 관객 동원 343만명을 기록한 <비긴 어게인>, 359만명이 관람한 <라라랜드>, 457만명을 동원한 <맘마미아!>와 무려 592만명이 보고 또 본 <레미제라블>을 넘어 국내 개봉한 음악영화 중 최고 흥행작 반열에 들어섰다. 한국이 퀸의 고향 영국에 이어 해외 흥행 2위라니, 역시 흥과 열과 낙의 나라 다이내믹코리아답다.

2018년의 우리는 왜 이토록 <보헤미안 랩소디>에 열광하는가. 가만 생각해보면 사실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퀸이 아닌가! 심장을 쿵쿵 뛰게 만드는 비트 속에 귀에 쏙쏙 박히는 멜로디로 ‘당신은 내 생의 사랑’이고, ‘날 멈출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으며’, ‘우리는 챔피언’이라고 외치는 밴드란 말이다. 게다가 단 몇분 안에 천국과 지옥을 들락날락하게 만드는 프레디 머큐리의 기적 같은 목소리를, 노래방과 떼창의 민족으로서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그리고 사실 이 영화가 아니더라도 퀸의 명곡들은 이미 광고와 영화와 방송 등으로 우리의 일상에 친숙하게, 깊이 스며들어 있었다. 며칠 전, 작업을 마치고 ‘한국의 웸블리’로 불리는 약속의 땅 ‘웸등포’로 3차 관람을 갔을 때, 자긴 퀸을 잘 모르는데 싱어롱 관람을 해도 되냐고 걱정하던 동료가 영화가 끝난 뒤 몹시 흥분한 상태로 “내가 다 아는 노래였네!”를 10번쯤 반복할 정도였으니. 쓰다 보니 지나친 사심으로 얼룩진 팬레터가 되고 있는데, 맞다. 이 글은 내가 가장 힘들 때마다 가장 큰 힘이 되어준 친애하는 밴드에 대한 짧은 애정고백이다.

4차 관람을 위해 예매를 하다가 문득 그들의 노래를 처음 들었던 때가 떠올랐다. 초등학생 무렵, 나름 독실한 꼬마 신자로 당시 다니던 모 대형 교회에서 ‘사탄의 음악’에 대한 경고성 특강을 듣게 되었는데, 비틀스와 마이클 잭슨, 퀸, 데이비드 보위, 레드 제플린, 마돈나 등의 이름을 처음으로 들었던 그 강의가 내 인생의 첫 현대음악사 수업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당시 전도사는 수업자료로 퀸의 <I Want to Break Free> 뮤직비디오 일부를 보여줬는데, “저들은 남자임에도 저렇듯 여장을 하고 다니다 서로 좋아하게 되어 에이즈에 걸렸다”는 식의 두서없는 이야기를 꽤나 열정적으로 전했다. 이제 와 고백이지만, 당시 난 그 뮤직비디오가 너무 웃겨 웃음을 참느라 힘들었고, 이후엔 그 신나는 멜로디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아 더욱 괴로웠다. 잠깐의 감상으로 이미 악마의 노예가 되어버린 내게 화가 난 하나님이 죽을병을 줄까봐 두려운 몇주가 지나갔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노래는 결코 잊히지 않았다.

이후 우여곡절 끝에 나는 다행히 더이상의 죄책감 없이 그들의 노래에 빠져들 수 있었고, 그렇게 20여년이 흘러 이제는 60대 엄마까지도 ‘퀸망진창’으로 만들어버리는 그들 음악의 경이로운 힘을 다시 체험하고 있다. 어린 나를 데리고 열심히 교회를 다녔던 엄마에게 오래전 전도사가 지적했던 그 어떤 지점들이 혹 마음에 걸리진 않았느냐고 조심스레 물었더니, 엄마는 바로 그렇기 때문에 더 좋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레디 머큐리는 여왕처럼 당당하게 자기 자신과 음악을 사랑하며 멋지게, 자유롭게 살지 않았느냐고. 그러면서 그러나저러나 일단 노래가 짱이지 않느냐고. 맞다. 노래가 짱이다. 또 이렇게 세상을 바꾸고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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