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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전주데일리]추천영화 두편
2002-04-27

추천하는 영화 두 편

판타지 애니메이션의 밤

불면의 밤을 각오하고 전주를 찾은 관객들에게, ‘판타지 애니메이션의 밤’은 제각각 다른 시공간을 넘어온 움직이는 그림들의 상상력을 펼쳐 보인다. 장편 애니메이션은 <웨이킹 라이프>와 <한여름밤의 꿈>의 2편. 미국의 독립영화 감독 리처드 링클레이터의 <웨이킹 라이프>는, 꿈인지 현실인지 모호한 한 남자의 시선을 따라 삶에 대한 갖가지 사색을 들려주는 디지털애니메이션이다. 물감으로 채색한 듯한 색감과 물처럼 일렁이는 이미지가 독특한 시각적 체험을 선사한다. 인형 애니메이션 왕국 체코의 거장 이리 트른카의 1959년작 <한여름밤의 꿈>은 저명한 셰익스피어의 원작에 바탕한 애니메이션. 움직임은 적지만, 손놀림과 같은 섬세한 표현과 정교한 세트, 음악과 함께 풍부한 감정을 실어나르는 각양각색 인형들의 매력을 발견할 수 있다.

장편 사이사이 기발하고 예리한 웃음, 혹은 낯선 이미지를 보여줄 단편애니메이션으로는 라울 세르베의 작품들과 ‘전쟁과 애니메이션’이 마련돼 있다. 벨기에 출신의 라울 세르베는 비판적인 시선, 실사와 애니메이션을 아우르는 실험으로 잘 알려진 작가. 천편일률적인 군대에 다양성을 박탈당한 나라의 사람들이 자유를 회복해가는 과정을 그린 <크로모포비아>, 가스 신무기를 잘못 사용한 강대국 때문에 국민 모두가 돌연변이로 변해 희생당하는 나라의 이야기인 <오퍼레이션 X-70>, 기계문명의 발달과 함께 할 일을 잃은 대장장이의 비애를 플랑드르 회화풍의 질감으로 그려낸 <페가수스>, 실사 배우를 촬영한 영상과 셀애니메이션, 일부 컴퓨터그래픽을 합성해 초현실적인 이미지로 탐욕을 풍자한 <하르피아> 등 인간을 억압하는 편견과 권력에 대한 세르베의 우화 9편이 소개된다. ‘전쟁과 애니메이션’에서는 실사영상을 적극 이용해 히로시마 원폭 투하의 이미지를 상징적으로 담은 <부유하는 세계의 이야기> 등 전쟁을 다룬 중·단편 4편이 상영된다.

황혜림

육체의 향연Too Much Flesh

장 마르크 바, 파스칼 아놀드 | 프랑스 |2000 | 105분

장 마르크 바의 변신은 놀랍다. 그는 80년대 프랑스의 최고 흥행작이었던 <그랑부르>에 물기 어린 눈의 잠수부로 출연했고, 95년 <엠파이어>가 선정한 ’영화사상 가장 섹시한 100명’에 선정되기도 한 배우였다. 그러나 할리우드 대신 유럽영화의 전위를 택한 그는 99년 도그마 다섯번째 영화 <연인들>을 연출하며 감독이자 제작자로서 도전적인 행보를 시작했다. <육체의 향연>은 그가 <연인들>의 작가 파스칼 아놀드와 함께 공동 연출한 작품으로 전작의 연장선상에 있다.

일리노이주의 작은 마을에 햇살이 빛난다. 옥수수 잎맥 하나까지도 눈부시게 흔들리는 그 밭에서, 태양을 향해 알몸을 드러낸 삼십 대 남자 라일은 마스터베이션에 빠져 있다. 그의 아내 에이미는 고집스럽게 금욕을 지키는 여자이기 때문이다. 무료하고 답답한 나날. 영원처럼 고정돼 있던 그 시간은, 라일의 옛친구 버논이 프랑스인 여자친구 줄리엣과 함께 돌아오면서 급류처럼 흐르기 시작한다. 라일과 줄리엣은 한밤 옥수수 밭에서 섹스를 나눈 뒤 서로의 육체를 생명수처럼 탐식하고, 경건한 마을 사람들은 충격에 차 비틀려 간다.

<육체의 향연>은 사랑의 자유를 말하는 <연인들>과 영혼의 자유를 주제로 삼은 <빙 나이트> 사이에 끼어 있는 3부작 중 한 편이다. 다른 두 편의 영화에서 지혜와 도발을 균형 있게 성취한 두 파트너는 <육체의 향연>에선 지나치게 도취한 면도 있다. 성(性)의 자유를 다룬 이 영화는 그리 새로울 것 없는 혼외정사에 몰두하며, 노출과 정사 역시 전원의 풍경화처럼 온순하기만 하다. 그러나 디지털로 촬영된 이 영화는 주제와 내용을 넘어 놀랄 만한 화면의 깊이와 색감을 자랑한다. 하늘과 땅과 호수가 끝을 맞대고 있는 일리노이 평원은 장 마르크 바가 디지털 영화가 거쳐야 할 단계를 만족스럽게 가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김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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