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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티풀 데이즈> <마담B> 윤재호 감독 - 나의 눈은 경계에 머문다
송경원 사진 오계옥 2018-12-06

윤재호 감독에게 2018년은 여러모로 특별한 한해로 기억될 것 같다. 첫 장편 극영화 <뷰티풀 데이즈>를 완성했고, 같은 시기 <뷰티풀 데이즈>의 초안이 되었던 다큐멘터리 <마담B>(2015)가 극장에 걸렸다. 프랑스에서 영화 작업을 해왔던 윤재호 감독은 단편 <약속>(2010), 다큐멘터리 <북한인들을 찾아서>(2012), 칸국제영화제 감독주간 단편부문에 초청된 <히치하이커>(2016)까지 꾸준히 분단 문제에 관심을 기울여왔다. 그 결실이랄 수 있는 <뷰티풀 데이즈>와 <마담B>는 극영화와 다큐멘터리라는 서로 다른 형식을 통해 이에 대한 감독의 목소리를 전한다. 관객 입장에서도 다양한 각도로 사안을 마주할 수 있는 의미 있는 만남이다. 어느덧 카메라를 잡은 지 10년이 다 되어가지만 이제 첫발을 디딘 것 같다는 윤재호 감독에게 충실한 기록과 작가적 재현의 차이, 대중과 예술의 간극에 대해 물었다.

-<뷰티풀 데이즈>와 <마담B>를 함께 개봉했다. 오랜 친구와 새 친구를 한자리에서 만나는 기분일 것 같다.

=<마담B>는 2016년 프랑스에서 먼저 개봉했다. 소재가 특별하기도 하고 여러 상황적인 문제도 있어 한국에서 개봉하기까지 2년이 걸렸다. 영화 속 장면들은 내게도 꽤 시간이 지난 일인데 이렇게 극장에서 다시 마주하니 기분이 묘하다. 내 삶의 한 부분에 박혀 있는 각별한 영화다. <뷰티풀 데이즈>는 2012년에 기획해서 시나리오가 2017년에 끝났다. 시나리오 단계만 5년이 걸렸다. 정확히는 5년 동안 투자를 못 받았다. (웃음) 첫 장편 극영화인 만큼 시작점에 선 기분이다.

-관객 입장에서 같은 소재의 이야기를 극영화와 다큐멘터리로 연이어 본다는 건 독특한 경험이다.

=<마담B>와 <뷰티풀 데이즈>가 똑같은 이야기는 아니다. <뷰티풀 데이즈>에는 다큐멘터리에 없는 이야기가 있고, <마담B>에는 극영화에 없던 이야기가 있다. <마담B>의 일부가 <뷰티풀 데이즈>에 녹아 있다고 보면 된다. 두 영화를 한 작품으로 봐주면 좋겠다. 영화의 메시지나 주제로 보면 두 영화는 서로 부족한 부분을 메워주는 한쌍이다. 다큐에서 미처 풀지 못한 질문에 대한 나름의 대답이 <뷰티풀 데이즈>라 해도 좋겠다.

-<마담B>가 예상 밖 만남과의 연속이었다면 <뷰티풀 데이즈>는 낮은 목소리로 설득을 하는 것 같다.

=다큐멘터리와 극영화의 차이는 단순하다. 전자는 의도되지 않은 순간을 목격하는 작업이고 후자는 의도된 방향으로 이끄는 작업이다. 다큐멘터리는 우연에 기댄다. 새로운 순간을 만나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리고 상관없어 보였던 상황들이 필연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반면 극영화의 경우는 짧은 시간에 메시지를 함축적으로 묶어내야 한다. 관객으로선 도착 지점이 비슷하다고 느낄 수 있겠지만 그에 이르는 과정이 전혀 다르다.

-그 말처럼 <마담B>는 귀납의 결과물, 즉 우연의 집합처럼 느껴지는 데 반해 <뷰티풀 데이즈>는 연역법으로 접근한다. 분단에 대한 다양한 상황을 취재했는데 어떤 메시지를 특별히 부각하고 싶었나.

=출발은 언제나 경계다. 사회가 만드는 시스템은 다수를 위해 디자인 되기 마련이다. 그 과정에서 주류에 속하지 못한 소수의 사람들이 필연적으로 발생한다. 나는 언제나 경계에 있는 사람들에게 끌려왔다. 개개인이 아무리 힘을 쓴다고 하더라도 거대한 시스템은 바뀌지 않는다. 그렇게 서서히 변두리로 밀려나는 삶, 항상 거기서 씁쓸함을 느낀다. 남한에 정착한 탈북 여성과 가족의 이야기로 첫 장편 극영화를 완성하고 나니 어느새 분단 문제 전문 감독처럼 포장되어 있더라. (웃음) 하지만 내 관심사는 언제나 시스템의 고발이 아닌 소수자의 삶, 그리고 사람이었다. 가령 내가 참여했던 옴니버스 프로젝트 <타이페이 팩토리>(2011)에서는 대만의 재개발 지역에서 쫓겨날 위기에 처한 사람들의 모습을 담았다. 분단은 내가 접한 하나의 상황일 따름이다. 큰 궤적을 그린다면 시스템이나 개인이 가진 편견을 걷고 사람 대 사람으로 바라보는 작업이다.

-<마담B>에서 북한 남편을 옆에 두고 중국 남편과 화상통화하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굳이 설명하거나 감히 이해하려 하지 않고 상황 그 자체를 보여준다. <뷰티풀 데이즈>의 몇몇 설정과 서사는 이에 대한 당신의 대답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 장면을 찍을 때 당황했던 기억이 있다. 중국 남편과 통화한다기에 다른 방에 가서 할 줄 알았는데 그냥 그 자리에서 통화하는 모습이 마담B가 어떤 사람인지를 잘 보여준다고 생각했다. 어떻게 살겠다는 각오와 스스로에 대한 당당함도 엿보였다. <뷰티풀 데이즈>에서는 좀더 구체적으로 표현하고 싶었다. <뷰티풀 데이즈>는 가족에 대한 이야기다. 가족이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5년 동안 고민해왔다고 볼 수도 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2013)에서처럼 결국 중요한 것은 우리가 얼마나 많은 시간을 함께했는지, 누구를 닮아가는거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뷰티풀 데이즈>의 엔딩에선 끝이 아닌 시작을 말하고 싶었다. 이제야 비로소 무언가 시작될 것 같은 느낌. 엔딩만큼은 그렇게 정해져 있었다.

-반면 다큐멘터리는 시작은 자유롭지만 어디서 끝낼지 판단하는 것이 힘들었을 것 같은데.

=<마담B>의 엔딩이 노래방 장면인데, 실제로도 그 촬영이 마지막이었다. 내가 취재한 탈북민들이 친구들이랑 노래방 가는 걸 좋아하는데 그날도 어울려서 노래를 10곡 정도 불렀다. 그중에 <초원>이라는 노래도 있었는데 그 노래를 들으면서 여기서 촬영을 끝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시에 못다 한 이야기와 내 안에서 풀리지 않은 질문들은 극영화로 풀기 위해 여러 상상을 시작했다.

-완성도에 비해 흥행 성적이 아쉽다. 남북 화해 분위기 속에서 상대적으로 어둡고 묵직한 이야기에 눈길이 잘 가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영화는 완성되면 감독의 손을 떠난다고 생각한다. 타이밍을 말하기도 하는데 그걸 염두에 두고 이야기를 준비할 수는 없으니 맡기고 기다릴 따름이다. 한편으론 드디어 하나의 주기가 끝난 것 같다. 꽤 오랜 시간 영화를 연출해왔지만 일반 극장에서 장편 극영화로 관객을 만나고 나니 이제야 출발선에 선 기분이다. 연출자로서의 고민이 시작되었다고 해야 할까. 흥행에 연연하고 싶진 않지만 되도록 많은 관객과 만나고 싶은 것도 사실이다. 대중성을 위해서 영화를 만들진 않겠지만 그런 점도 충분히 고려해서 작업에 반영하고자 한다. 알레한드로 곤살레스 이냐리투 감독의 영화처럼 작가의 고집을 유지하면서도 대중적으로도 소통할 수 있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 <뷰티풀 데이즈>는 거기로 가기 위한 시작점이다.

-이미 차기작 작업에 들어갔다고 들었다. 올해 부산국제영화제 아시아프로젝트마켓에 <바닷사람>이 선정되기도 했는데.

=두편을 동시에 진행 중이다. <바닷사람>은 장르적으로 보면 액션영화다. 소외된 사람들을 구해내는 작은 영웅에 대한 이야기다. 손이 닿는 곳에 있는 이웃을 도와주는 작은 변화를 그리고자 한다. 시스템에서 밀려난 사람들을 그리되 장르를 활용해 접근의 폭을 넓힐 수 있을 것 같다. 다른 한편은 아직 제목을 공개하긴 힘든데 호러영화다. 시나리오는 끝났고 현재 캐스팅 중이다. 내년 상반기에 촬영하고 연내에 개봉하는 게 목표다. 당분간은 극영화에 집중하겠지만 다큐멘터리를 닫아놓은 건 아니다. 언제나 우연이 필연처럼 다가오길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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