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르도의 링컨>을 읽기 위해서는 사전에 알아야 할 것이 있다. 일단 ‘바르도’는 티베트의 불교 용어로, 이승과 저승 사이의 공간이다. 죽은 영혼이 사후 세계로 가기 전에 잠시 머무는 곳, 우리에게 익숙한 개념으로는 연옥이나 림보 정도가 되겠다. 2017년 맨부커상을 받은 <바르도의 링컨>에 쏟아지는 찬사 중 가장 자주 언급되는 것이 ‘창의적이고 독창적’이라는 평인데, 이는 아마도 이 소설의 형식 때문일 것이다. 일단 특정한 시점으로 사건이 진행되지 않고, 화자가 달리 없으면서도 대화들은 분절되어 있다. 어느 장은 희곡처럼도 느껴지고 또 어느 장에서는 서사시처럼도 느껴진다. 바르도에 머무는 여러 영혼들이 혼잣말을 하다가, 어느 책이나 신문의 문장을 인용하기도 한다. 낯선 형식이라 20페이지 정도 읽다가 다시 앞으로 돌아가 “이게 소설이 맞나?” 들춰보기도 했다. 다행히 작가조차 “이 소설을 끝까지 읽을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라고 생각했다고 하니, 독자는 이 생경함을 자기 탓으로 돌리지 않아도 좋다. 1862년 링컨 대통령의 셋째아들 윌리 링컨이 장티푸스로 사망한다. 링컨이 대통령에 취임한 다음해에 일어난 사건이었다. 당시 윌리의 나이 11살이었고, 신문에 의하면 링컨은 장례를 치른 뒤 시신이 안치된 곳을 찾아가 몇 차례나 아들의 주검을 안아주었다고 한다. 대통령이자 아버지였던 링컨이 죽은 아들을 껴안고 오열하는 이미지, 작가 조지 손더스는 이 이미지에서 착안해 <바르도의 링컨>을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익숙하지 않은 형식으로 인해 바르도의 세계 속에 진입하는 데에는 다소의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내 그 영혼들의 대화와 세상의 연결고리를 찾아낸 후에 이 독서의 경험은 새롭게 다가온다. 영혼들의 언어에 귀를 기울이자. 그들은 1862년 바르도를 떠도는 영혼들이다. 또한 지금의 우리이기도 하다. 죽은 사람들의 말을 통해 현실 세계와 사람 사이의 관계, 공감을 탐구하는 소설이다.
어떤 시작
결혼식 날 나는 마흔여섯이고 그녀는 열여덟이었습니다. 그래,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고 있습니다. 나이 많은 남자(늘씬하지도 않고, 머리도 약간 벗어지고, 한쪽 다리를 절고, 나무 틀니를 낀)가 혼인 특권을 행사하고, 그렇게 해서 가난하고 젊은 여자에게 굴욕감을 주고…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그거야말로 내가 하지 않으려던 겁니다. 네.(1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