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립 로스의 중편소설 <에브리맨>의 주인공 ‘그’는 누가 봐도 할아버지로 보일 나이에 조깅을 하다가 동네의 아름다운 젊은 여성과 자주 마주치게 된다. 그는 젊은 시절 제법 여성 편력을 자랑했고, 생각해보니 젊은 여자쪽‘도’ 그에게 마음이 있는 것 같다. 물론 아니었고, 그저 친절한 사람이고 싶었던 여성은 이후 다시는 그와 같은 코스를 지나지 않았다.
도리스 레싱의 단편소설 <사랑하는 습관>을 읽다가 그가 떠올랐다. 1947년, 조지는 전쟁도 끝났으니 돌아와 결혼하자는 편지를 오스트레일리아에 있는 연인 마이러에게 쓴다. 그녀는 귀국을 거절한다. 조지는 연극계의 거물인 예순살 남자. 돈을 잘 버는 그는 여자들과도 잘 사귄다. 어느 날 갑자기 자신의 나이듦을 마주한 그는 전 애인 마이러나 전 부인 몰리와 결혼해 살고 싶어진다. 마이러는 차분한 거절의 답신을 보냈고 몰리는 꽤 연하인 의사와 결혼을 할 예정이라고 한다. 조지는 몰리에게 매달려보지만 그녀는 두 사람 사이에 있던 과거사- 여러 차례에 걸친 조지의 외도- 를 잊지 않고 있다. 조지는 자기 연민에 특화된 예술하는 남자. “여자들을 그렇게 잘 아는데도 또 불쌍해진 것 같았다.” 심지어 그는 전 부인이 새 결혼을 다소 부끄러워한다고 판단하고는, “우리 결혼 생활이 워낙 좋았으니 그렇게 조금 노는 거야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지. 그리고 난 언제나 사실대로 말할 수 있는 일만 해야 한다고 생각했소. 그래서 당신한테 항상 사실대로 말한 거고.”
조지는 건강 때문에 썩 쓸 만한 경력을 갖고 있지 않은 배우인 보비를 간호사로 고용한다. 30대인 그녀와 조지의 관계가 소설의 후반부를 장식하는데, 나이 든 남자가 젊은 여자를 사랑의 대상으로 여길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오로지 착각을 통해서, 환상을 통해서 보고 싶은 것만을 보는 상황이 어떤 것인지 도리스 레싱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게다가 보비는 연극무대에 다시 서면서 이번에는 스물 즈음의 남자를 사랑하게 된다. 하지만 애초에 보비는 아무런 기대도 하지 않는다.
저지른 과오를 잊는 어리석은 자만이 행복할 수 있다. 갑자기 솟구치는 욕망 속에서 소년이 된 기분을 느끼는 환갑 즈음의 남자들. 필립 로스가 지독한 자기애와 그로 인한 수치심으로 그려냈던 장면들을 도리스 레싱은 설명 없는 차가운 웃음을 곁들여 소설로 썼다. 중년 여성들의 욕망이라고 예외는 아니며, 설명하지 않은 곳에 있었던 진심이 그렇게 드러난다. 어떤 사랑은 습관일 뿐이며, 거기서 얻을 것은 비웃음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