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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명진 프로그래머의 <우리 모두의 나치> 가해자의 시선

감독 로버트 크레이머 / 출연 알베르트 필버 / 제작연도 1984년

로버트 크레이머 감독의 1984년 작품 <우리 모두의 나치>를 통해 약 40년이란 세월이 흘러 마주한 병약한 나치 전범은 꽤나 지적이며 친절하기까지 한 노인이다. 이 영화는 악의 평범성에 대한 불편한 깨달음을 넘어 노약자라는 사회적 관념의 카테고리 안에서, 이제는 보호 대상이 돼야 할 것 같은 가해자를 만나게 되는 혼란 속으로 관객을 소환한다. 끊임없이 관객에게 질문을 던지게끔 하는 이 영화를 위해서 우선 2명의 독일 감독 얘기로부터 시작해야 할 것 같다. 그들은 부자관계였던 베이트 할란과 토마스 할란이다. 베이트 할란은 나치정권 선전부 장관 괴벨스의 전폭적인 지지 속에 가장 악명 높은 반유대주의 영화라 일컬어지는 <유대인 쥐스>를 만들었다. 아버지와 함께 어린 시절 히틀러의 식탁에 초대받기도 했던 토마스 할란은 아버지와 그들 세대에 대한 증오를 품고 독일 극좌운동에 참여한다. 그리고 <유대인 쥐스>의 대척점에서 <파괴된 운하>(1985)라는 작품을 제작한다. 이 영화의 줄거리는 독일의 적군파가 그 모델인 좌파 무장 게릴라들이 나치 전범을 납치한 뒤 그에게 죄를 고백하게 하고 심리적 고문을 통해 스스로 자살하게 만든다는 이야기다. 이 영화에서 감독은 아버지의 열렬한 팬이자 실제 나치 전범으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복역하다 건강상의 이유로 감형, 자유의 몸이 된 게슈타포 지휘관 알베르트 필버를 캐스팅하고 대다수의 스탭을 나치 대학살에 희생된 실제 유족들로 구성한다. 여기에 더해 토마스 할란은 미국 유대인 출신인 로버트 크레이머 감독을 자신의 메이킹 필름 감독으로 초청한다. 이렇게 탄생한 로버트 크레이머의 다큐멘터리가 <우리 모두의 나치>다. 고압적으로 심문을 하듯 촬영장을 지휘하는 토마스 할란. 감독은 촬영과정 중 현기증을 일으킨 필버를 부축한 스탭들을 마치 현장에서 체포한 나치 부역자인 듯 자신의 카메라 앞에 세운 뒤 범죄자 체포사진을 연상시키는 사진을 찍기도 했다. 이렇게 촬영장은 재판의 장이 되고 카메라는 적을 겨누는 총구가 되었다. 아마도 역사와 법이 완성하지 못했던 처벌을 그는 고대했던 것 같다. 그러나 영화의 결과는 초라했고, 또 하나의 <유대인 쥐스>가 만들어졌다. 참여했던 스탭들 역시 나치전범에 대한 분노에도 불구하고 촬영장에서 감독에게 학대에 가까운 심문을 받는 쇠약한 노인에 대한 동정이라는 양가적 감정에 고뇌해야 했다. 크레이머 감독의 <우리 모두의 나치>는 이렇게 가해자와 피해자가 자리를 바꾸는 혼란스럽고 불편한 모든 과정을 담아낸다.

그리스 신화 속에 등장하는 메두사는 그를 직시하는 사람들을 돌이 되게 하는 힘을 가졌다고 한다. 이 괴물을 직접 바라보지 않고 처단하기 위해 페르세우스는 그의 모습을 비추는 아테네의 방패를 사용하여 괴물의 목을 벨 수 있었다. 자신의 분노와 거리두기를 하는 데 실패했다고 고백하면서 <파괴된 운하>의 필름을 모두 소각하려 했던 토마스 할란 감독과 달리 크레이머 감독은 한 걸음 떨어져 할란의 영화제작 과정을 비추는 자신의 카메라를 방패로, 메두사를 직시하고 돌이 되어간 사람들의 모습을 영화 속에 담아내고 있다. 그리고 이 과정 속에서 토마스 할란이 파헤치고자 했으나 실패한 메두사의 모습, 바로 여전히 죄의식 없이 살아가고 있는 한 나치의 초상이 약자의 역할을 능숙히 해내는 알베르트 필버조차 미처 계산해내지 못했던 미세한 균열의 틈 사이로 떠오르게 한다. 역사의 가해자들에게 카메라를 직접 들이댄 영화가 아직은 많지 않은 한국적 상황에서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작품이다.

조명진 DMZ국제다큐영화제 프로그래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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