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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헤미안 랩소디> 록 밴드 퀸의 일대기를 조명한 영화, 위대한 밴드의 신화를 일깨우다

WE WILL ROCK YOU

※전기영화인 만큼 스포일러가 많습니다. 하지만 전기영화이기 때문에 읽고 영화를 보는 게 더 이해가 빠를 수도 있습니다. 선택은 여러분의 몫입니다.

영국의 전설적인 록 밴드 퀸의 일대기를 조명한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가 10월 31일 국내 개봉한다. 이 작품은 파워풀한 가창력과 화려한 쇼맨십으로 유명했던 리드 보컬 프레디 머큐리(래미 맬렉)를 중심으로 밴드의 성공과 갈등, 록의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공연 중 하나로 손꼽히는 1985년 <라이브 에이드>에서의 공연 등을 다룬다는 점에서 일찌감치 화제가 됐다. 퀸이라는 이름의 위대한 밴드가 쌓아올린 신화를,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는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 오랫동안 퀸의 팬이었던 배순탁 음악평론가가 영화에 대한 애정 어린 글을 보내왔다.

세어본 적은 없지만 100번은 넘었다고 확언할 수 있다. 다름 아닌 내가 고등학교 시절 퀸의 1985년 <라이브 에이드> 참여 실황과 1986년 <라이브 앳 웸블리>를 VHS로 본 횟수다. 그때의 나는 퀸이라는 밴드에 완전히 미쳐 있었다. 그들의 모든 음반을 카세트테이프로 구입해 싹 다 들어봤고, 대표곡을 모아놓은 《Greatest Hits》 컬렉션은 부모님을 졸라 CD, 그것도 당시 화제가 된 ‘골드 CD’로 샀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렇다. 그때의 나는 고작 고등학생 따위였다. 퀸의 음악을 왜 그리 애정하는지에 대해 설득력 있게 풀어낼 능력이 한참이나 부족했다. 그저 친구들에게 “퀸, 진짜 죽이지 않냐?”를 앵무새처럼 되풀이했을 뿐이다. 그 뒤에도 고민은 계속됐다.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퀸에 열광하는 가장 큰 이유는 도대체 무엇일까. 그러던 차에 커트 코베인의 유서를 읽게 되었고, 그제야 비로소 그 이유를 어렴풋이나마 알 수 있었다.

“예를 들어 너바나가 백스테이지에서 대기하고 있을 때 객석의 불이 꺼지면서 관객의 열광적인 환호성이 들려도 나는 아무런 감동을 느낄 수 없다. 관객이 보내는 애정과 숭배를 진심으로 즐길 줄 알았던 프레디 머큐리가 대단히 부럽고, 존경스럽다.” (For example when we’re backstage and the lights go out and the manic roar of the crowd begins, it doesn’t affect me the way in which it did for Freddy Mercury, who seemed to love, relish in the love and adoration from the crowd, which is something I totally admire and envy.)

커트 코베인의 고백처럼 프레디 머큐리는 천생 가수였다. 그는 무대에 서기 위해 태어난 바로 그 사람이었다. 그는 매혹하는 자였다. 인류 역사상 최강이라 불러도 과언이 아닐 가창력으로 관객을 매혹했고, 역동적인 무대 퍼포먼스로 눈을 못 떼게 만들었다. 프레디 머큐리는 캐릭터를 구축하는 데도 선수였다. 데뷔 초에는 화려한 의상으로 이미지를 강조했고, 이후에는 머리를 짧게 자르고 콧수염을 길러 자기만의 트레이드마크를 창조해냈다. 요컨대, 사람들에게 콧수염 하면 누가 떠오르냐고 설문조사를 돌려보라. 대부분이 다음 2명의 이름을 거론할 게 틀림없다. 프레디 머큐리와 배철수다.

프레디 머큐리 하면 떠오르는 짧은 길이의 마이크 역시 마찬가지다. 영화에도 나오듯 기실 이 독특한 마이크는 우연의 산물이었다. 클럽 공연에서 마이크 높이를 수정하다 지지대의 절반이 쑥 빠져버린 것이다. 한데 프레디 머큐리는 흔들림 없이 당당했다. 곧장 마이크를 휘두르면서 폭발적인 가창력을 선보였고, 비웃던 관객의 웃음기를 싹 지워버렸다. 그 순간 나머지 멤버들의 심정은 어땠을까. 모든 파트가 밴드에서 동등하게 중요하지만 성공의 가장 큰 바탕은 보컬리스트에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어림잡아 복권 1등에 당첨된 것과 비슷하지 않았을까 짐작해본다.

퀸의 전기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의 중심은 어쩔 수 없이 프레디 머큐리다. 영화는 그와 나머지 3명의 멤버들이 어떻게 밴드를 결성했고, 음악을 함께 만들어나갔는지를 제법 상세하게 전시한다. 우선, 이런 유의 전기영화에서 관객이 가장 중요시하는 요소는 아무래도 실존 인물과의 ‘싱크로율’일 것이다. 싱크로율이 낮으면 집중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 적어도 이 지점에서 <보헤미안 랩소디>는 관객을 확실하게 만족시킨다. 레이 찰스의 일생을 그린 <레이>(2004)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프레디 머큐리, 영화와 현실 사이

프레디 머큐리 역을 맡은 래미 맬렉은 두말할 것도 없다. 기타리스트 브라이언 메이와 베이스 연주자 존 디컨을 각각 연기한 귈림 리와 조셉 마젤로는 몇몇 장면에서 너무 똑같아서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 이보다는 조금 약하지만 드러머 로저 테일러로 분한 벤 하디의 싱크로율도 만만치 않다. 걸리는 부분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무엇보다 래미 맬렉의 의치를 과하게 튀어나오도록 설정한게 아닌가 싶은데 영화 감상에 크게 방해되지는 않는다. 추측하건대 프레디 머큐리의 외모 콤플렉스가 도리어 보컬리스트로서 그의 장점이었음을 부각해 표현하고 싶은 의도였을 것이다.

음악적인 측면에서도 칭찬할 구석이 여럿이다. 예를 들어 <Bohemian Rhapsody>를 처음 듣는다면 당신은 필연적으로 다음과 같은 질문을 떠올릴 수밖에 없다. “후반부의 오페라 코러스는 어떻게 녹음한 거지?” <보헤미안 랩소디>는 영화의 핵심이라 할 이 곡의 녹음 과정을 아주 꼼꼼하게 보여준다. 나는 여러 글을 통해 이미 곡의 레코딩 과정에 대해 꿰고 있는 상태였다. 그럼에도 화면으로 직접 목격하는 경험은 확실히 달랐다. 노래가 품고 있는 역사를 생생한 톤으로 되살려냈다는 점에서 <보헤미안 랩소디>는 <러브 앤 머시>(2014)만큼이나 인상적인 성취를 일궈낸다.

본디 <Bohemian Rhapsody>는 발매 자체가 불가능했을 수도 있는 곡이었다. 돈을 댄 제작자가 “곡이 너무 길다”는 이유로 반대를 한 것이다. 그는 노랫말에도 트집을 잡았다. 하긴, 그럴 만도 했다. 당신이 제작자라고 상상해보라. 녹음실에서 180회 넘게 오버 더빙을 한 탓에 엄청난 자본이 투입되었는데 돌아온 건 “사형수의 알쏭달쏭한 고백”과 ‘맘마미아’, ‘비스밀라’, ‘스카라무슈’, ‘갈릴레오’ 같은 단어로 점철된 혼돈의 오페라라니, 좀 많이 당황스럽지 않겠는가 말이다.

퀸의 멤버들은 이 곡이 어떤 의미인지에 대해 자세하게 부연한 적이 없다. 혹시 그들은 신비로움을 유지해 해석의 장을 열어두는 게 도리어 곡에 영속성을 부여할 수 있음을 본능적으로 파악하고 있었던 게 아닐까. 이 신에서 여러분이 꼭 눈여겨봐야 할 대목이 있다. 멤버들이 제작자의 방을 나가기 직전 벽에 걸린 레코드 하나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이것도 당신이 제작한 거죠?”라고 말하는 장면이다. 지목을 당한 앨범은 바로 핑크 플로이드의 1973년 걸작 《Dark Side of the Moon》. 참고로 <Bohemian Rhapsody>의 러닝타임은 5분55초인데 핑크 플로이드의 저 음반에는 6분이 넘는 곡이 무려 3곡이나 수록되어 있다.

<Bohemian Rhapsody>에 대한 당시 평가는 영화에서도 볼 수 있듯 사실 그리 호의적이지 않았다. “필요 이상으로 과장되었다”는 게 평단 대부분의 견해였다. 한데 이건 <Bohemian Rhapsody>를 넘어 퀸이라는 밴드를 향한 것이기도 했다. 비평가들은 지속적으로 그들의 “일관성 결여”를 문제 삼았다. 확실히 퀸의 음악에는 수많은 장르들이 혼재하고 있었다. 그들은 레드 제플린만큼이나 강력하고 육중한가 하면 데이비드 보위만큼이나 화려하고 과시적이었다. 또, 때로는 발라드 전문 가수보다 더 감미로운 멜로디(<Love of My Life>)를 노래하고 연주했다.

<Bohemian Rhapsody>는 이처럼 다채로웠던 퀸의 페르소나를 응축해놓은 곡이었다. 아카펠라를 시작으로 발라드와 오페라, 하드 록을 넘나든 끝에 수미쌍관의 종결부로 마무리되는 형식부터가 복잡하고, 파격적이었다. 따라서 평가가 극단으로 엇갈린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였다. 결국 이 곡(과 퀸)은 후대에 평가가 완전히 전복된 케이스로 지금까지도 손꼽히고 있다. 1970년대 내내 낮은 평가에 시달려야 했던 아바와 유사한 운명을 겪은 셈이다.

이제는 그 누구도 퀸의 위대함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다. 비단 <Bohemian Rhapsody> 뿐만은 아니다. 1980년 싱글로 나와 빌보드 1위에 오른 《Another One Bites the Dust》 역시 디스코라는 이유로 멤버간에 이견이 있었고 비판의 도마 위에 올랐지만 어느새 명곡으로 널리 인정받고 있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한다. 영화에는 없는 재미있는 스토리가 하나 있다. 원래 퀸은 이 곡을 싱글로 발매할 의향이 없었다고 전해진다. 그렇다면 지인들 중 한명이 “싱글로 내면 무조건 될 거예요”라고 추천했을 거라는 가설을 세워볼 수 있다. 맞다. 놀랍게도 추천인은 마이클 잭슨이었다고 한다.

영화는 1985년 <라이브 에이드> 출연으로 마무리된다. 당시 <라이브 에이드>는 역사상 가장 거대한 규모의 공연 이벤트였다. 누가 그랬던가. “친구의 우정을 확인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밴드를 하는 것이다. 밴드를 하면 할수록 쉽게 우정이 깨지기 마련이지만.” 프레디 머큐리의 솔로 활동에 따른 해체 위기를 딛고 퀸은 <라이브 에이드>의 수많은 출연진 중 단연 최고라 할 퍼포먼스를 펼쳐낸다.

글쎄. 나처럼 <라이브 에이드> 영상을 수십번 돌려본 팬이라면 감흥이 조금 덜할 수도 있다. 그러나 주변에 여러 차례 자문을 구해본 결과, 퀸을 세세하게까지는 알지 못하는 음악 및 영화 애호가들에게는 꽤나 큰 감동을 준 것 같다. 여기에 더해 앞서도 언급했듯 매우 높은 싱크로율, 히트곡에 스며 있는 이야기의 충실한 재현, 인종 및 성적 정체성과 죽음 앞에 고뇌했던 프레디 머큐리의 개인사까지, <보헤미안 랩소디>는 압도적인 대중의 환호를 기꺼이 먹고산 퀸의 역사를 우직한 태도로 보여주는 작품이다. 우직한 만큼 만듦새가 다소 평면적이기는 하지만 퀸의 매력을 느낄 수 있을 정도는 충분히 된다.

대중의 사랑을 먹고 자란 록스타

과거 퀸에 대해 언제나 적대적이었던 음악 전문지 <롤링 스톤>은 <Bohemian Rhapsody>를 두고 “사랑하지 않을지언정 존경하지 않을 수 없다”고 적었던 바 있다. 절반 정도는 비판한 글이었지만 영화를 보고 나니 저 비판을 전적으로 비판하지 않을 수 없다. 과연 그러하다. 대중음악이 탄생한 지 60년이 넘은 현재까지도 퀸만큼 대중의 열렬한 사랑을 받은 밴드는 몇 없었다.

그 사랑을, 퀸은 관객과 더욱 교감할 수 있는 노래(<We Will Rock You>)를 만들면서까지 진심으로 즐길 줄 알았다. 그들은 대중음악이 본질이 어디에 있는지를 잘 알고 있는 밴드였다. 비평가 척 클로스터먼은 현대 대중음악이 작가의 의도보다는 관객의 반응으로 규정된다는 점에서 가치 있다고 주장한 바 있다. 여기에 정확하게 부합되는 사례가 바로 퀸의 음악인 것이다. 이 작품 <보헤미안 랩소디>를 보면 당신도 동의할 거라고 확신한다.

<Bohemian Rhapsody>에 대한 몇 가지 흥미로운 사실들

<Bohemian Rhapsody>의 발매가 난관에 처하자 프레디 머큐리는 기발한 아이디어를 떠올려 실천에 옮긴다. 친한 라디오 DJ에게 이 곡이 담긴 레코드를 주면서 “그냥 선물이니까 라디오에서 틀면 안 돼”라고 말한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이 DJ는 곧장 자신의 방송에서 <Bohemian Rhapsody>를 틀어버린다. 영화는 이런 과정을 통해 <Bohemian Rhapsody>가 마침내 싱글로 나와 전세계를 매료했다고 설명하지만 하나 더 챙겨야 할 팩트가 있다. 이 DJ가 처음에는 1절만 틀고 곡을 끊어버렸다는 거다. 어땠겠나. “지금 장난하냐”면서 전곡을 다 틀라는 청취자들의 요구가 빗발처럼 몰려오지 않았겠나. 결국 이 DJ는 이틀 동안 <Bohemian Rhapsody> 전체를 총 14번 플레이했다고 한다. <Bohemian Rhapsody>는 1980년대 MTV 시대를 예고한 곡이기도 하다. 홍보를 목적으로 제작한 영상이 이후 현대 뮤직비디오의 원형으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실제로 기왕의 음악 관련 영상은 고작해야 연주하는 장면을 단순히 편집하는 수준에 불과했다. 그러나 퀸은 자신들의 음악이 영상이라는 새로운 언어를 통해 재탄생하기를 원했다고 한다. 유튜브에 있으니 감상해보길 권한다.

1975년 영국 크리스마스 주간 싱글 차트 1위에 오른 <Bohemian Rhapsody>는 1991년 다시 한번 크리스마스 주간 차트 정상에 올랐다. 프레디 머큐리의 사망 때문이었다. 영국에서 크리스마스 주간 차트는 따로 정리되어 있을 만큼 큰 의미를 지닌다. 이 시기를 ‘박싱 데이’라고 부르는데 박스에 크리스마스 선물을 넣어서 준다는 뜻이다. 예전에는 음반 선물이 가장 흔한 것이었기에 다른 때보다 박싱 데이의 전체 음반 판매량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이렇게 크리스마스 주간 차트 1위에 두 차례나 오른 만큼, <Bohemian Rhapsody>는 영국에서 세 번째로 많이 팔린 싱글로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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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이십세기폭스코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