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돌아온 프리마돈나, 불멸의 무용수. 제인은 그렇게 불렸다. 전성기가 지났다는, 혹은 이제 은퇴를 앞두고 있는 왕년의 스타라는 뜻일 거다. 서른여덟의 나이는 회복보다 마모가 빨라 춤을 출 때면 온몸의 관절들이 비명을 질러댔다. 지금 누군가가 그녀의 방문을 거칠게 두드린다. 15년이나 함께 거주한 헬퍼, 크리스티나다. 크리스티나는 제인과 진의 딸 레나를 돌본다. 엄마인 제인보다 레나와 더 가까운 사이인 크리스티나. 레나는 이제 16살이 되었다.
박영 작가의 <불온한 숨>의 무대는 싱가포르다. 제인은 7살 때 싱가포르로 입양된 뒤, 양어머니의 죽은 딸이 했던 것처럼 발레를 배워야 했고 성공한 무용가가 되었다. 어느 날 제인은 크리스티나가 밤늦게 집을 빠져나가는 모습을 보게 되고, 그녀가 남자와 밀회를 갖는다는 사실을 확인하고는 해고하기로 한다. 해고당하면 싱가포르에서도 추방당해 모국으로 돌아가야 하는 크리스티나는 욕실에서 팔목을 그어 자살을 기도하고, 레나는 엄마인 제인에게 반항하기 시작한다. 그런 딸의 반항에도 크게 동요하지 않는 제인을 뒤흔드는 것은 텐이라는 안무가가 그녀에게 공연을 제안하면서부터다. 텐이 누구인지 알기 위해 제인은 과거를 떠올린다.
제인의 남편이자 레나의 아버지인 진의 존재감이 이상하리만치 옅은 이 이야기는 텐의 등장과 함께 불안하고 미스터리한 성격을 띠며 변주된다. 제인은 무용가로서의 커리어를 우선시하며 살아왔다. 꽉 짜인 안무에 맞춰 몸을 움직이던 그녀에게 텐의 안무는 파격 그 자체다. 문제는 텐이 원하는 춤을 그녀가 알고 있다는 것. 대학생 시절 그녀는 숲속 버려진 건물에서 그 춤을 췄다. 마리와 맥스와 함께. 꿈과 같던 쾌락과 기쁨은 폭력적인 방식으로 끝나버렸다. 영영 잊고자 했던 그 시간을 되살린 텐은 대체 누구인가.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불온한 숨>이라는 거대한 춤의 무대는 창작자의 내밀한 자의식 그 자체다. 성취를 위한 선명한 자의식은 타인의 눈에는 이기적일 뿐이다. 자아가 불안정한 창작자라면 타인의 눈을 의식하는 데 에너지의 태반을 쏟는다. 하지만 어쩌면 그 가짜 같아 보이는 것들이야말로 진짜가 아닐까? 가질 수 있는 것이 그것뿐이라면.
※ ps. 2018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소설의 영화화 판권 판매를 위해 열리는 ‘북 투 필름’에 선보인다는 <불온한 숨>. 박영 작가가 떠올린 주인공 제인에 가장 어울리는 배우는 전도연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