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밤이 오면>의 주인공 엔젤 라미어(도미니크 피시백)는 이제 막 18살이 되어 소년원에서 출소한다. 엔젤이라는 캐릭터를 이해하는 데 흑인, 레즈비언, 가정폭력 생존자 같은 말은 필수적이겠으나 영화에선 부수적일 뿐이다. 오랜만에 만난 엔젤의 여자애인은 “대체 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다”며 관계를 끊고 싶어 하는 눈치다. 엔젤은 멈칫하다가 이렇게 말한다. “눈을 감으면 아빠가 엄마의 머리를 화장실 벽에 찧어대던 장면이 생각나. 그래서 눈을 감을 수가 없어.” 엔젤은 총을 구하고, 위탁가정에 맡겨진 동생과 조우하고, 아버지를 찾아나서는 중이다. 엔젤의 아빠는 엄마를 살해했고, 엔젤은 엄마의 복수를 원한다. 어떻게 지냈냐는 여자친구의 질문에 엔젤이 어떻게 답했어야 했을까. 엔젤은 눈을 감았을 때 떠오르는 장면을 묘사한다. 이런 얘기를 듣길 원해? 여자친구는 답한다. 좀 낫네.
나는 이 장면에 분개했다. 겨우 이 정도 반응을 듣기 위해서 자신의 악몽을 타인에게 말해야 할 이유가 있을까. 사람들은 비극에서 살아남은 피해자가 제정신을 유지하면 비인간적이라고, 속을 알 수가 없다고, 피해자답지 않다고 말한다. 하지만 놀라운 것은 피해자의 멀쩡함이 아니라 그런 말을 듣고도 무심하게 굴 수 있는 태도다.
페미니스트 철학자이자 성폭력 피해 생존자인 수잔 브라이슨은 놀라운 사실을 발견한다. 지독한 감기에 걸렸다고 말하면 너무나 다정하게 대할 것이 분명한 이웃과 친구와 가족들이 성폭력 피해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성폭력, 존속살해, 가정폭력, 인신매매 등처럼 개인을 완전히 파괴한다고 알려진 범죄의 피해자라고 알려진 사람들에게 주변인들은 이상할 정도로 무심하게 군다. 피해자에게 어떻게 말해야 할지에 대한 사회적 관습이 부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상상을 뛰어넘는 고통을 겪은 당사자들은 자신의 경험을 어떻게 재현해야 하는지 알지 못한다. 이것이 피해자들이 겉보기에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살아가는 이유다.
무지라는 권력에 직면하고 앎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무엇보다도 우리가 알아야 하는 것은, 어떤 폭력도 여성을, 인간으로서의 여성을 파괴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무엇이 이토록 고통스러운 현실 속에서도 인간다움을 결코 잃어버리지 않도록 하는 걸까. 엔젤은 눈을 감는다. 그리고 살해당한 엄마가 해준 이야기를 떠올린다. “밤에 눈을 감고 바깥의 자동차 소리에 귀를 기울이면, 그 소리가 꼭 파도 소리처럼 들려.” 아빠에게 총을 겨눈 엔젤의 용기는 죽은 엄마의 상상력과 만나 결국 그녀의 삶을 살린다. 복수와 치유가 한 장면에서 이루어진다. 나는 이것이야말로 기적 같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밤이 오면>은 올해로 12회째를 맞이한 여성인권영화제의 개막작이다. 좀더 알려져야 마땅한 이 오래된 작은 영화제는 이런 기적 같은 이야기로 가득 차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