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헨티나에 사는 88살의 재단사 아브라함(미구엘 앙헬 솔라)의 집에 손주들 여럿이 모여 할아버지와 기념사진을 찍는다. 얼마나 화기애애한 광경인가 싶지만, 속사정인 즉 아버지를 양로원에 보내기로 한 딸들이 죄책감을 덜기 위해 마련한 일종의 자선 파티였다. 딸들을 단호하게 귀가시킨 아브라함은 그날 오후, 자신이 만든 마지막 슈트 한벌만 챙겨 폴란드로 떠난다. 70년간 자신을 기다려온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서다.
첫인상은 온전한 1인분의 대우를 받지 못해 분할 따름인 노년의 인물이 번듯한 생활력을 증명하기 위해 애쓰는 코믹한 분투처럼 보인다. 그러나 유대인인 아브라함이 어떻게든 독일 땅을 밟지 않고 폴란드로 가겠다며 기차역에서 생떼를 부리는 장면에 이르면 불길한 예감을 떨치기 어려워진다. <나의 마지막 수트>는 나치의 유대인 학살이라는 비극적인 역사에 빚을 지고 있는 이야기다. 아우슈비츠에서 가족을 잃은 자신을 물심양면 도와준 친구에게 아브라함이 전했던 다시 만나자는 약속. 영화는 세월에 휘감긴 두 친구의 비밀을, 긴 여행길을 밟아가듯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풀어낸다. 전쟁의 상흔을 되짚는 노년의 귀향 드라마인 동시에, 아브라함을 돕는 낯선 이들의 호의를 살뜰하게 조명하면서 인간을 향한 희망의 끈도 놓지 않는다. 한국영화 <내 아내의 모든 것>(2012)의 원작자인 아르헨티나의 감독 겸 각본가 파블로 솔라르스의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