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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잠> 남은 기억을 보존하는 방식
임수연 2018-09-05

료코(나카야마 미호)는 유전으로 인한 알츠하이머로 기억을 잃어가는 소설가다. 원래 유치한 통속소설을 주로 쓰던 그는 병을 계기로 오히려 달라지려고 한다. 사람들 앞에 나서기 원치 않았던 그가 낭독회를 열고,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문학을 가르친다. 한편 료코는 술집에서 잃어버린 만년필을 찾아준 것을 계기로 한국인 유학생 찬해(김재욱)와 가까워진다. 찬해는 료코가 연도별·작가별로 딱딱하게 정리했던 서재를 색상에 따라 재정리하고 글이 아닌 말로 소설을 쓰는 작업을 돕는다. 그러다 두 사람은 사랑에 빠지지만, 안타깝게도 료코의 알츠하이머 증상은 점점 심각해진다.

알츠하이머 선고를 받은 후 오히려 삶에 변화를 줬던 료코처럼, <나비잠>은 잃어가는 기억의 안타까움보다는 남은 기억을 보존하는 방식에 집중한다. 시각적으로 아름답게 기억을 재정돈하고 싶다는 료코의 욕망은 예술의 형태로 스크린에 펼쳐진다. 료코가 읽어나가는 문장, 그리고 이를 액자식 구성으로 구현한 영상이 조화롭다. 특히 료코가 아이디어를 내고 찬해가 실행에 옮겨 완성한 팔레트 같은 서재의 풍경은 이 영화의 대표적인 이미지. 끝이 보이는 시한부 인생이 사랑에 빠지면서 벌어지는 사건은 겉보기에 료코가 썼던 소설처럼 진부하지만, 찬해의 일본어가 서툴다는 설정을 활용해 문장의 작은 뉘앙스 하나까지 섬세하게 짚어나가는 솜씨는 결코 빤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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